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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구대 암각화 보존?

등록일 2014-02-21 02:01 게재일 2014-02-21 18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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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권오신 `로타리 코리아` 발행인

1971년 처음 학계에 보고된 울산 반구대 바위그림(국보 285호)은 선사인의 사유와 삶을 통째로 드러내 주는 생생한 기록물이다. 적어도 3천여년 전에 조성되기 시작한 반구대 암각화 주변은 선사에서 역사시대에 이르는 유적들이 분포되어 있는 곳이며 최근에는 공룡발자국 화석까지 발견된 곳이다.

특히 대곡천을 거슬러 올라가는 협곡에서 바위를 굴러 집채 같은 고래를 잡는 고래사냥 그림은 지구상에서 가장 오래된 그림이며 아기 고래를 등에 업고 유영하는 어미고래 모습역시 너무나 사실적인 명화다. 진흙이 굳어져 만들어진 셰일(泥巖)의 벽면엔 사람과 고래 외에도 호랑이 사슴 거북이 가마우지 등 뭍짐승을 새겼다. 요즘으로 치면 장엄한 초대형 그림(祭壇畵)이다.

지난해 여름 반구대 암각화를 보존하기 위해서 물막이 댐 설치계획이 나왔었는데 이 안이 보류된 모양이다. 지난달 16일 국립 고궁박물관에서 열린 문화재위원회 건축문화재분과는 울산시가 신청한 `가변형 투명 물막이 시설(키네틱 댐)`에 대한 타당성을 검토한 끝에 `보류`쪽으로 가닥을 잡은 것으로 알려 졌다. 세계적 유적 앞에 이런 볼썽사나운 시설물이 영구적으로 설치되는 데 대한 반대의견이 분위기를 이끌었던 것 같다.

물론 가변형 시설에 대한 보완 설명을 통해 향후 공사 결정이 나겠지만 원래 모습이 훼손되지 않아야 하겠다는 것이 반구대암각화를 사랑하는 국민들의 여망이다. 반구대 암각화는 세계적 문화재다. 아쉽게도 울산공단의 공업용수 공급을 목적으로 댐이 건설된 이후에 세상에 알려짐으로써 년 중 8개월 안팎을 물에 잠겨야 하는 물고문이 계속되면서 훼손 속도가 붙었다.

당국이 지난해 여름 고민 끝에 만들어 낸 보존 책이란 것이 이른바 `가변형 투명 물막이(키네틱 댐)`이다. 알려진 것처럼 길이 55m, 폭 16~20m, 높이 16m의 댐을 오는 10월까지 설치할 계획이었다.

합리적 영구 보존방법은 수위를 지금보다 7m쯤 낮추어서 물이 닿지 않도록 하는 안이었지만 식수문제를 걱정하는 울산시의 입장에 맞물려서 이런 기묘한안이 나온 모양이다. 미래 식수문제를 걱정하는 울산시의 입장도 중요하다. 그러나 더 이상 반구대 유적이 훼손되면 세계인들이 사랑하는 우리의 정신적 유산이 묻히고 만다. 지난여름 필자가 반구대와 천전리 암각화 유적지를 찾았을 때도 망원경으로도 고래그림을 알아보기 힘들었다.

1970년 동국대학교 학술조사단에 의해 발견된 천전리 각석(蔚州 川前里 刻石)역시 신석기 시대부터 신라에 이르기까지 여러 시대에 걸쳐 조성된 암각화이다. 가로 9.5m, 높이 2.7m의 인위적으로 다듬은 것 같은 넓은 바위 면에 조각이 가득하다. 바위 면은 아래를 향하여 약 15˚각도로 기울어져 있고 햇볕이 잘 들지 않아서 풍화로부터 보존될 수 있었다.

상층부는 신석기 시대에서 청동기 시대에 걸쳐 이뤄진 조각이 있다. 조각대상의 내부를 파낸 쪼으기 기법이었다. 이 암각화를 조성한 선지식을 가운데에 두고 사슴, 뱀과 새, 물고기 등의 형상이 있는가하면 마름모꼴이나 둥근 모양을 가진 기하학적 무늬도 존재한다.

또 초기 신라부터 통일신라까지 기마행렬도, 배가 항해하는 모습 등이 새겨져 있다. 800자 가량 있었던 것으로 추정되는 명문(銘文)은 비바람에 마멸되거나 후대에 의하여 훼손되어서 300여 자 정도만 확인될 뿐이다. 신라 화랑들의 이름이나 당시의 직위명 등이 포함되어 있어, 법흥왕 이후 신라사 연구에 도움을 주고 있다. 천전리 각석역시 수분 흡수로 인한 팽창성 성분이어서 풍화의 속도가 빠르다.

울산 대곡천 상류에 위치한 반구대 바위그림은 우리민족이 전 세계에 자랑할 국보 중에 국보다. 수위를 낮출수록 하천의 원래 개념으로 돌아가지 않던가. 가뜩이나 태화강 하구에서 20km이상 떨어진 곳임에도 마멸 속도가 빨라 고고학계가 고심하는 중요문화재이니 영구보존방안은 빠를수록 좋다.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암각화는 2만여년 전 구석기시대 스페인 북부 알타미라 동굴 벽면(270m)에 그려진 사슴 들소 말 돼지 그림이다. 스페인 정부는 1977년 지난 70년간 이 지역 주민들의 생계를 책임졌던 이 동굴의 영구보존을 위해 관광객들의 출입을 막아 버렸다. 인류의 중요한 자산을 지키기 위해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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