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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가니 그늘 벗어나 `힐링` 필요했다”

연합뉴스
등록일 2014-02-10 02:01 게재일 2014-02-10 14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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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수상한 그녀`로 연타석 흥행에 성공한 황동혁 감독
홀로 키운 아들을 국립대 교수까지 만든 할머니 오말순. 자식들에게 버림받고 요양원에 갈 신세로 전락한 그녀는 우연히 본 `청춘사진관`에서 사진을 찍은 후 20대 여성으로 변신한다. 동화 같은 이야기를 토대로 한 심은경 주연의 영화 `수상한 그녀` 얘기다.

차진 코미디와 판타지는 시민을 극장으로 불러들였다. 지난달 22일 개봉 후 박스오피스 1~2위를 차지하며 500만 관객 돌파를 눈앞에 뒀다. 이런 상업영화를 연출한 감독의 이름은 익숙하면서도 낯설다.

실정법 개정까지 이끌어내며 커다란 파장을 불러 일으킨 `도가니`(2011·466만명)를 연출한 황동혁 감독과 이름이 같다는 점에서 익숙하고, 그동안 사회적 문제에 천착한 황 감독의 이름이 가벼운 코미디 영화의 크레딧과는 어울리지 않다는 점에서 또한 낯설기 때문이다.

“`도가니` 찍을 때 많이 힘들었어요. 그런데 찍고 나서 사회적으로 엄청나게 주목받으면서 더 힘들었죠.”

지난 6일 오후 서울 종로구 통인동 한 카페에서 만난 황 감독 말이다.

그는 시쳇말로 “힐링이 필요했다”고 한다. `도가니`의 그늘에서 벗어나고 싶었다. 그가 코미디 `수상한 그녀`의 시나리오를 보고 주저하지 않고 연출을 맡겠다고 한 이유다. “`도가니`를 보면서 관객들이 팝콘조차 먹지 못하는 걸 여러 차례 봤다”던 그는 관객에게 “팝콘을 돌려줄 수 있는 영화를 찍고 싶다”는 생각에 이르렀다.

“영화가 끝나고 한 커플이 나오는데, 팝콘이 거의 그대로더라고요. 한 청년이 걸어가면서 팝콘을 먹는데, 같이 가는 여자분이 `넌 그게 지금 넘어가니`라며 핀잔을 주더라고요. 그때 팝콘을 먹으며 즐길 수 있는 영화를 만들어야겠다는 생각을 했던 것 같아요.”

`수상한 그녀`는 작업 속도가 일사천리였다. 한 달 반 만에 시나리오를 각색했고, 석 달 만에 다 찍었다. 도가니에서 표현 수위를 조절하는 게 가장 어려운 일이었다면 이번에는 “코미디 영화를 하는데, 진짜 웃기게 찍는 건지 아닌지 판단하는 게 어려웠다”고 한다.

“너무 웃기려고 생색내는 코미디는 안 좋아해요. 어디까지가 자연스러움을 유발하는 웃음일까를 놓고 고민에 고민을 거듭했어요. 그래서 저희 할머니 이야기도 넣기도 했고요.”

상업영화를 상업영화답게 제대로 한 번 찍어보자는 각오로 영화를 찍었고, 영화는 기대 이상의 성과를 거두고 있다. 순제작비는 약 36억원에 불과하지만 그 10배 가까운 340억원의 매출을 올렸다. 지금의 흥행속도라면 600만 관객은 무난히 넘을 것으로 보인다.

성공 신화는 썼지만 그의 이 같은 `변신`을 달가워하지 않은 사람들도 많았다. 일각에선 “변절했다”는 평가마저 나돌았다. `마이 파더`(2007)와 `도가니`(2011)처럼 사회 밑바닥을 훔치거나 환부를 조명하는 영화를 만들다가 대기업의 기획영화에 가까운 코미디를 만들었기 때문이다.

“웃자고 만들었는데, 죽자고 달려들었다고 할까요? `이제는 돈 벌려고 영화 만든다` `변절했다` 등 정말 많은 이야기를 들었어요. 그런 시선이 사실 부담스럽긴 해요. 제가 뭐 독립운동한 사람도 아니잖아요. 재미도 중요하죠.”

사실 그를 영화계로 이끈 건 순전히 영화가 주는 재미였다. 특파원 생활을 해보고 싶어서 1990년 서울대 신문학과(현 언론정보학과)에 입학했지만, 시대가 시대였던 만큼 학생운동이 그를 사로잡았다.

그러나 마르크스가 떠난 대학가에 푸코가 들어앉고, 취직 공부를 시작할 나이가 되자 그는 어느덧 “패배자처럼 캠퍼스에 남겨져” 있었다. “세상을 바꾸고자 거리를 뛰어다니던 삶”과 “취업을 위해 도서관에서 시간을 보내는 삶”의 간극은 너무 컸다.

방황 속에서 영화가 찾아왔다. 시간을 때우기 위해 영화를 “엄청나게” 보면서 차츰 영화에 대한 애정을 키웠고, 어머니가 사온 비디오카메라를 이용해 주변을 찍으면서 `천직`을 찾게 됐다.

“앞날이 어두울 수 있다고 생각했어요. 그래서 고민의 시간이 길었죠. 3년이나 고민했으니까요. 그래도 영화가 너무 재밌었어요. 영화 말고 재미를 느끼며 일할 수 있는 일을 찾을 수 없었어요. 어머니의 반대가 걱정됐지만, 어머니도 찬성해 주셔서 결국 영화 일을 하게 됐네요.”

그는 “무언가 찍고 있을 때, 글을 쓸 때나 연출을 하면서 생각지도 못한 좋은 생각이 나왔을 때, 배우가 예상치 못한 뛰어난 연기를 보여줄 때, 무엇보다 그가 만든 영화를 보고 관객들이 호응할 때” 살아있음을 느낀다고 한다. 그리고 그런 희열을 느낄 수 있는 영화들을 계속해서 만들고 싶다고 한다.

“`도가니`는 저에게 `양날의 검`과도 같은 작품입니다. 훈장이자 꼬리표죠. 제가 뭘 하든 따라다니겠죠. `수상한 그녀`를 하면서 `도가니`의 부담감을 어느 정도 털어냈어요. 앞으로 즐겁게 영화를 찍고 싶어요. 무거운 영화든 가벼운 영화든 다양한 장르의 영화에 도전하고 싶습니다.”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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