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9년 만에 20번째 장편 `시선`으로 복귀한 이장호 감독
최근 한국영상자료원이 발표한 한국영화 100선 중 10위 안에 눈길을 끄는 세 편의 영화가 있다.
6위를 차지한 `별들의 고향`(1974), 공동 7위에 오른 `바람불어 좋은 날`(1980), 공동 9위를 차지한 `바보선언`(1983). 모두 이장호(69) 감독이 메가폰을 잡은 작품이다.
100년 역사를 자랑하는 한국영화사에서 열 손가락에 드는 작품을 세 편이나 만들 정도로 그는 1970~80년대를 대표했던 감독이다. 그러나 한동안 영화를 만들지 못했다.
`천재선언`(1995)을 마지막으로 학교에서 교편을 잡거나 서울영상위원회를 이끌었다. 하지만 영화는 늘 삶의 화두였다. 그리고 오랜 기다림은 결국 결실로 이어졌다.
이장호 감독이 충무로에 복귀했다. 데뷔 40주년을 기념해 만든 20번째 장편영화 `시선`을 들고서다. `마스터 클래스의 산책`(2013)이란 공동 연출작을 선보인 바 있지만 단독 연출은 29년 만이다.
`시선`은 이슬람 국가로 선교를 떠난 기독교 선교단이 무장단체에 납치되면서 벌어지는 이야기를 담은 영화다. 순교와 배교 사이에서 흔들리는 인간의 약한 마음을 섬세하게 그렸다. 엔도 슈사쿠의 장편 소설 `침묵`을 모티브로 했다.
“그전에는 영화를 만들면서 사물을 보는 세계관이 부족했습니다. 20여 년간 내리막길을 걸었는데, 그 내리막길은 감사로 가득 차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걸 느끼면서 제 스스로 변화했습니다. 그 사이에 영화를 만들려고 굉장히 노력했는데 이뤄지지 않았어요. 그래서 학교에서 학생들을 가르치면서 시간을 보냈습니다. 이제 정년퇴임도 하고 할 게 없는데, 다행히 영화진흥위원회가 지원하는 프로젝트에 당선됐습니다. 일이 잘 풀릴 때가 온거죠.”
이장호 감독은지난 17일 서울 마포구 상암동 한국영상자료원에서 열린 `시선`의 상영회가 끝난 후 가진 관객과의 대화(GV)에서 이같이 말했다.
그는 50일간 캄보디아에서 영화를 촬영했다. 30년 가까이 영화를 찍지 않았기에 동시녹음도 처음으로 진행했다. 여건이 좋아진 만큼 오랜만에 찍었어도 영화 만들기가 그리 어렵지는 않았다고 한다.
“우선 영화감독으로서 필름 걱정을 하지 않으니 너무 좋아요. 예전에는 NG를 내면 두렵기 시작했죠. 필름 걱정 때문에 마음 놓고 찍지도 못했어요. 예전 감독들은 자기 생각의 40~50%만 표현해도 다행이라고 생각했을 거예요. 지금은 많이 개선됐죠. 동시녹음인데다, 모니터를 보면서 현장 편집도 가능한 상황이죠. 과거와 비교해 볼 때 지금 영화 찍는 환경은 천국이에요.”
이 감독은 최근 `이장호 감독의 마스터클래스`도 선보였다. 김홍준 한국영상자료원 영상원 교수와의 대담을 묶은 책으로, 그의 40년 영화 인생의 역정을 엿볼 수 있다.
신상옥 감독의 조감독으로 충무로 생활을 시작한 그는 기념비적인 데뷔작 `별들의 고향`으로 1970년대 독재의 그늘에 탄식하는 청춘을 위로했고, `바람 불어 좋은 날` `어둠의 자식들`(1981), `과부 춤`(1983), `바보 선언`으로는 한국 리얼리즘 영화의 계보를 이었다.
아울러 `무릎과 무릎 사이`(1984), `어우동`(1985) 같은 상업영화를 연출한 팔색조 감독이었다. 한국영화 르네상스였던 1960년대 조감독 생활을 하던 이장호 감독은 2년 연속 한국영화가 1억 관객을 돌파하는 신(新) 르네상스 시대에도 여전히 영화를 찍고 있다. 그리고 그는 계속해서 영화를 찍고 싶다고 말한다.
“동시녹음 하면서 영화를 찍으니 연기자들이 빛나더군요. 이렇게 개선된 환경에서 영화를 계속해서 만들고 싶어요. 이제 인생도 후반전에 들어섰는데, 역사에 길이 남을만한 영화를 만들고 싶습니다.”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