밴드에서 전인권(보컬·60)과 최성원(베이스·60)의 투닥거림을 조율해준 주찬권의 빈자리는 꽤 컸다. 그가 세상을 떠난 뒤 들국화의 잰걸음도 멈춰버렸다.
“앨범 내고서 이렇게 돼 허전하고 허탈한 기분이에요. 아무렇지도 않던 (주)찬권이가 갑자기 떠나니 빈자리가 크죠. 그 친구가 없으니 저와 (최)성원이가 어색해졌어요. 찬권이 삼우제(三虞祭) 때 얘기하며 뜻이 다른 걸 알게 됐고 이후 못 만났네요.”최근 삼청동의 한 카페에서 인터뷰한 전인권은 담담하지만 가감 없이 이야기를 풀어놓았다. 갈색 선글라스 사이로 그의 미간이 살짝 찌푸려졌다.
팀 해체라고 대놓고 얘기하진 않았지만, 속내와 상황은 충분히 읽혔다.
“해체란 말은 불편해요. 이별은 더 싫고요. 지금은 남은 둘이 팀에 대해 절실하지 않아요. 힘들고 절실하면 우린 빛날 정도로 어울리는데…. 하지만 일회용으로 돈 좀 벌자고 그럴(활동할) 생각은 추호도 없어요. 우리가 음악적으로 다정해지는 것도 현재로선 어렵고요.” 음악계에선 `한국의 비틀스`로 불리는 들국화에서 전인권과 최성원을 존 레논(보컬 겸 기타)과 폴 매카트니(보컬 겸 베이스)에 비유해왔다. 레논과 매카트니에겐 불화설이 따라다녔지만 매카트니는 지난해 인터뷰에서 이를 일축했다.
전인권도 “밴드는 사소한 것부터 음악적인 견해 등 안 다투는 팀이 없다. 싸우면서도 붙어서 해내는 게 밴드”라고 강조했다.
이어 “우린 구심점을 찾아야 하는데 그걸 못 찾고 있다”며 “언젠가 둘이 친해질 수 있는 것이고 무지 절실해질 수도…. 오는 10월 찬권이 1주기 추모 공연을 위해 8~9월께는 (제주에 사는 성원이를) 만나볼 생각”이라고 말했다.
◇ “3~4월부터 전인권밴드 활동”
들국화는 그간 멤버들이 각자 음악을 해온 터라 전인권은 젊은 친구들과 `전인권밴드`를 결성해 이르면 3~4월께부터 활동을 이어간다. 들국화 앨범에 대한 후배들과 팬들의 아쉬움이 커 작은 공연장에서 이번 신곡도 노래할 계획이다. 또 자신이 만들어둔 미발표곡 8곡 중 남미 록 스타일의 밝은 곡 `사람답게`를 전인권밴드의 싱글로 낼 계획도 갖고 있다.
“멤버들은 25살, 30살 차이가 나요. 요즘 젊은 친구들의 실력은 눈부시죠. 전인권밴드의 공연에선 친한 후배인 원더걸스 예은, 김그림과 `잼`(Jam·즉흥연주)을 하듯 놀아보고 음악적인 교류가 깊은 게이트플라워즈의 염승식도 종종 나타날 겁니다. 후배들은 노련미와 감성은 우리와 다르지만 힘이 있습니다.”그는 지산록페스티벌(2012), 펜타포트록페스티벌(2013) 등에서 공연하며 젊은 세대와의 교감에 매력을 느꼈다. 또 과거의 들국화를 추억하는 사람들이 많아 이들에게 젊은 기운을 불어넣고 싶다고도 했다.
“지산에서 `사랑한후에`를 부를 때 `젊은 친구들이 좋아할 수 있는 아픔이 있구나`란 걸 느꼈다. 펜타포트에서는 어린 친구들이 들국화의 과거 곡도 다 알아 놀랐어요.”
◇ “새 앨범은 한마디로 감성과 경험”
들국화의 이번 앨범에는 후배들이 넘보지 못할 관록이 만개했다. 지난해 조용필이 19집에서 동시대 트렌드를 흡수했다면 들국화의 음악은 1985년 1집에 뿌리를 뒀다.
전인권은 “앨범을 한마디로 말하면 감성과 경험”이라고 강조했다.
애초부터 세 멤버가 어떤 방향으로 해보자는 건 없었다. 각자 곡을 쓰고 편곡했는데 `한길`로 통했다. 전인권은 “우리가 `꼬장`을 타고났는데 그 근본이 같기 때문”이라고 웃었다. 합주 형태로 녹음을 진행했고 정원영(키보드), 함춘호(기타), 김광민(피아노), 한상원(기타) 등이 힘을 보탰다. “정원영의 역할이 컸다. 밴드 스타일의 음악에서 그는 최고의 실력자”라고 극찬했다.
신곡과 과거 히트곡 등 19곡이 담긴 앨범에서 `걷고, 걷고`, `노래여 잠에서 깨라`, `하나둘씩 떨어져` 등 다섯 곡의 신곡은 그늘졌지만 거침이 없다. 초기 음악이 1980년대 언더그라운드 문화의 파괴력을 보여줬다면 이번엔 지난 30년간 켜켜이 쌓인 인생의 단층이 보인다.
`노래여 잠에서 깨라`는 전인권(작사)과 최성원(작곡)의 합작품.
전인권은 이 곡의 노랫말에 대해 “내가 마누라도 잃고 카지노에서 돈도 잃고 아무것도 없을 때 마누라가 돌아오기를 바라면서 많은 사람이 내 노래를 다시 느꼈으면 좋겠다고 쓴 가사다. `사랑한후에`는 사랑 노래로 볼 수 없으니 이 곡은 처음 쓴 사랑 노래”라고 말했다.
주찬권이 작곡하고 전인권이 가사를 쓴 `하나둘씩 떨어져`는 녹음 당시 후렴구를 완성하지 못했다. 그러나 주찬권이 떠난 후 전인권은 `그대 어디로 갔나, 숨은 듯 어제오늘 (중략) 어디에 있나, 난 울고 있을 뿐`이란 가사를 채워넣었다.
김민기의 곡을 리메이크한 `친구`는 주찬권을 기리며 삼청동 자택에서 다시 녹음했다.
그는 “난 그간 이 곡을 반항적인 노래로 생각했다”며 “시대 저항의 느낌이 강해 `삑사리`(음이탈)도 내며 불렀는데 친구가 떠나서인지 다른 감정으로 다시 불렀다. 진짜 마음이 아플 때 담담해지지 않나”라고 설명했다.
이어 “`그 사람은 떠났는데 영혼이 남아있다`는 어느 시구처럼 찬권이가 간 다음 날 탑골공원에서 설렁탕을 먹는데 내가 찬권이 흉내를 내고 있었다”며 “더 먼저 떠난 (들국화 원년 멤버로 1997년 캐나다에서 교통사고로 별세) 허성욱에 대한 기억도 요즘 많이 떠오른다”고 덧붙였다.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