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유 주연 영화 `용의자` 연출한 원신연 감독
주인공 공유는 싸우고, 달리며, 차를 몰다가, 강에 뛰어든다. 장면 전환은 1초 단위로 분절되지만 `도망`이라는 주제를 놓고 보면 이 모든 장면은 하나의 거대한 시퀀스라 할 만하다. 쓰나미가 닥치기 전에 조금씩 높이 올라오는 파고처럼, 영화의 액션 규모는 시간의 흐름과 함께 점증한다.
“고생하며 찍었다는 말을 많이 듣는데 그건 별로 중요한 게 아닌 것 같아요. 고생한 흔적을 보여주는 게 중요한 게 아니라 얼마나 영화가 좋은가가 중요합니다. 그게 전부입니다.”
이같이 말하는 원신연 감독은 자신감에 차 있는 듯 보였다. 흥행과 관련해서는 언뜻언뜻 불안의 그림자를 내비쳤지만, 작품 자체에 대한 긍지는 강한 것 같았다. 최근 서울 종로구 삼청동의 한 카페에서 그를 만났다.
`용의자`를 어떻게 시작하게 됐느냐는 질문에 그는 “영화를 찍고 싶다는 생각이 간절했을 때 `용의자`를 제안받았다”며 “망설임 없이 하겠다고 했다”고 말했다. 당시는 `세븐데이즈`(2007) 이후 `로보트 태권브이`를 준비했으나 제작과 투자 문제로 영화의 진행이 지지부진하던 차였다.
“제가 칠할 수 있는 여백이 많으면서 상업영화로서도 충실한 시나리오였어요. 액션만으로 차 있지 않고, 이야기를 중심으로 한 액션영화로 발전할 수 있을 가능성이 농후했죠. 그러나 각색작업은 쉽지 않았습니다. 통상 한두달 안에 끝내는데 무려 반년이나 걸렸습니다.”
각고의 노력 끝에 완성된 `용의자`는 북한에서 버림받고 남한에서 대리운전을 하며 살던 전직 북한 특수부대 출신 용병 `지동철`(공유)이 대기업 회장 살인사건의 누명을 쓴 채 쫓기며 벌어지는 얘기를 그렸다.
영화는 액션으로 빼곡히 채워졌다. 액션으로 한 편의 드라마를 보여주겠다던 감독의 야심이 장면마다 묻어난다. 자동차는 비좁은 골목길은 물론 계단까지 마음껏 내달리고, 주인공 공유는 한강에서 뛰어내리고 절벽을 서슴없이 타고 넘는다.
액션 장면이 많은 영화지만 원 감독은 `용의자`가 액션 영화는 아니라고 강조했다. 액션은 어디까지나 이야기를 보조하는 수단일 뿐이라는 것이다. 그는 “액션의 탈을 쓴 드라마”라며 “영화는 가장 중요한 걸 잃어버린 한 남자의 절망에 찬 이야기”라고 영화를 소개했다.
사실 절망의 밑바닥을 헤매는 인물들의 이야기는 초년작부터 `용의자`까지 그의 작품을 관통하는 키워드다.
노동자의 고달픈 삶을 담은 서울독립영화제 최우수작품상 작 `빵과 우유`(2003)를 비롯해 유선 주연의 공포영화 `가발`(2005), 한석규 주연의 코미디 `구타유발자들`(2006), 김윤진 주연의 스릴러 `세븐데이즈`(2007)까지, 그의 영화에 등장하는 캐릭터들은 끝 모를 바닥으로 추락한다.
“희망의 빛 한 조각조차 없을 때까지 인물들을 밑바닥까지 떨어뜨립니다. 사실 사람들이 표현하지 않을 뿐 평범한 사람들도 그런 절망을 안고 살아간다고 생각합니다. 제 영화에는 그런 정서가 담겨 있어요.”
그래서다. `용의자`에는 “죽는 것보다 사는 게 어렵지” “너도 한 번 느껴봐 총구 끝에 선 느낌을”처럼 염세적인 대사들이 상당하다.
“제 영화의 가장 작은 단위는 사람입니다. 장르가 다르더라도 거기서 출발한다는 건 변함이 없어요. 사람은 늘 저의 화두입니다.”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