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제는 개막장 드라마를 쓰더라도 시청률만 높으면 그만이라는 방송가의 생각들이다. 시청률에 집착한 작가는 작가정신이나 작품성은 물론 시청자를 위한 최소한의 배려도 생각지 않는다. 관심 끌 수만 있다면 그 어떤 에피소드라도 적극 활용한다. 주요 등장인물들을 느닷없이 중도하차 시키는가 하면, 개연성 없는 죽음으로 이끌어 시청자들을 황당하게 만든다. 기이한 장면들과 대사들도 빈번하게 동원한다. 유체 이탈에다 귀신 출몰은 예사이고, 기괴한 시집살이 장면은 애교를 넘어 실소를 부른다. 이해할 수 없는 총체적 현상들이 드라마를 지배한다. 그래도 시청률은 높다. 아니, 그래서 시청률이 높다.
대중의 심리는 묘하다. 정돈된 드라마보다 욕하면서 보는 드라마에 정신줄을 놓게 된다. 작가와 방송사는 그것을 십분 활용하고 시청자는 불편한 내용인 걸 알면서도 단순한 호기심에 같이 놀아난다. 이 모든 게 돈 때문이다. 시청률 높은 작가는 광고 완판을 부르고, 콧대 높아진 작가는 집필부터 캐스팅까지 무소불위의 권력을 행사한다. 큰 수익을 가져다주는 작가 앞에서 방송사는 윤리고 양심이고 따질 겨를이 없다.
품위를 버린 그들이 쌍으로 돈의 노예가 될 때 시청자가 나서면 되겠지만 그 또한 쉽지 않다. 막장 드라마 따위는 안 보면 그만이라고 하겠지만 `어쩔 수 없이`라는 변명만큼 시청자의 심리를 대변하는 말도 없다. 비상식적이고 말 안 되는 일은 도처에서 일어난다. 욕하고 분노하면서도 거기에 동조하는 게 일반대중의 역할이다. 시청률을 무기로 슈퍼갑이 된 작가는 대중을 우롱하고, 방송사는 직무유기로써 그 책임을 회피한다. 대중은 욕하면서 그 시청률을 높여준다. 이것이 삶의 속성이다.
/김살로메(소설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