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런 사고 형성의 배경엔 나쁘거나 아픈 기억들이 숨어 있을 것이다. 이를 테면 청춘 시절, 내가 가장 부러워했던 주변인은 용돈이 넉넉한 친구들이었다. 학업과 관계되는 곳 말고 `사교적 목적`으로 용돈을 깜냥껏 부릴 수 있는 친구들이 무척 부러웠다. 부모의 경제력 덕에 궁핍을 모른 채 마냥 해맑을 수 있는 그들의 느긋한 천진성을 질투했다. 가난한 우리를 대신해 스스럼없이 커피값이나 술값을 낼 수 있는 그 무덤덤한 여유가 신기하게만 보였다. 저토록 찬란한 제스처라니! 꿈에서라도 내게 그런 날이 올 수 있을까 자문하곤 했다.
시간은 흘렀다. 돈 없어 고개 처졌던 청춘들도 결혼을 하고 저마다의 일가를 이루었다. 적어도 돈의 노예에서 벗어나 심리적 안정기에 접어들었다. 맘만 먹으면 누구에게나 소박한 호의를 베풀 수 있게도 되었다. 누가 해주기를 바라기 전에 먼저 베풀고, 민폐를 끼치기 전에 먼저 도움 줄 수 있는 것, 그 정서적 쾌감을 만끽할 수도 있게 되었다.
그랬다. 호의를 베푸는 것은 단순한 호의가 아니라 그것은 갑의 입장이 된다는 것을 뜻한다. 호의를 받는 쪽이면 빚진 마음을 안게 돼 불편하지만, 호의를 베푸는 자는 그 자체만으로도 맘의 여유를 느낀다. 수전노가 아니라면 베푸는 자의 쾌감은 그 어디에 비할 바가 아니다. 빚지는 자, 을이고, 베푸는 자, 갑이라는 심리적 경험을 거쳤기에, 그 때문에 자신의 지갑을 열겠다고 서로 실랑이를 벌이는지도 모르겠다.
/김살로메(소설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