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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푸는 심리

김살로메(소설가)
등록일 2013-11-01 02:01 게재일 2013-11-01 19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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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구나 그렇겠지만 나 역시 빚지는 걸 몹시 싫어한다. 여기서 빚이란 물질적, 정서적 둘 다를 말한다. 빚질 일도 있고, 베풀 일도 많고 그런 게 인지상정일 터인데 혹시라도 민폐를 끼치거나 신세지고 있다는 생각이 들면 벌써 마음끝자락에서부터 불편해지기 시작한다. 성격 좋게 빈대 붙거나 남의 호의를 호방하게 받아들이는 데는 익숙지 못하다. 굳이 따진다면 호의를 베푸는 쪽이 훨씬 맘이 편하다. 남이 내게 호의를 베풀면 그에 걸맞는 보답을 해야 한다고 생각하는, 어떻게 보면 갑갑한 부류이다.

이런 사고 형성의 배경엔 나쁘거나 아픈 기억들이 숨어 있을 것이다. 이를 테면 청춘 시절, 내가 가장 부러워했던 주변인은 용돈이 넉넉한 친구들이었다. 학업과 관계되는 곳 말고 `사교적 목적`으로 용돈을 깜냥껏 부릴 수 있는 친구들이 무척 부러웠다. 부모의 경제력 덕에 궁핍을 모른 채 마냥 해맑을 수 있는 그들의 느긋한 천진성을 질투했다. 가난한 우리를 대신해 스스럼없이 커피값이나 술값을 낼 수 있는 그 무덤덤한 여유가 신기하게만 보였다. 저토록 찬란한 제스처라니! 꿈에서라도 내게 그런 날이 올 수 있을까 자문하곤 했다.

시간은 흘렀다. 돈 없어 고개 처졌던 청춘들도 결혼을 하고 저마다의 일가를 이루었다. 적어도 돈의 노예에서 벗어나 심리적 안정기에 접어들었다. 맘만 먹으면 누구에게나 소박한 호의를 베풀 수 있게도 되었다. 누가 해주기를 바라기 전에 먼저 베풀고, 민폐를 끼치기 전에 먼저 도움 줄 수 있는 것, 그 정서적 쾌감을 만끽할 수도 있게 되었다.

그랬다. 호의를 베푸는 것은 단순한 호의가 아니라 그것은 갑의 입장이 된다는 것을 뜻한다. 호의를 받는 쪽이면 빚진 마음을 안게 돼 불편하지만, 호의를 베푸는 자는 그 자체만으로도 맘의 여유를 느낀다. 수전노가 아니라면 베푸는 자의 쾌감은 그 어디에 비할 바가 아니다. 빚지는 자, 을이고, 베푸는 자, 갑이라는 심리적 경험을 거쳤기에, 그 때문에 자신의 지갑을 열겠다고 서로 실랑이를 벌이는지도 모르겠다.

/김살로메(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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