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지만 박경리 선생은 고뇌 가득 찬 작가로 살도록 운명 지어진 것처럼 보인다. 우뚝 선 그날까지 선생에겐 편할 날보다 험한 날이 더 많았다. 부성(父性)으로부터 내침을 당한 어린시절, 너무 짧은 결혼 생활과 남편의 사망, 어린아들의 죽음, 병마와의 싸움, 사위의 감옥생활 등등 한 여자로서 겪어야 할 온갖 고통을 선생은 친구처럼 곁에 두었다.
일상인으로선 감당하기 힘겨운 시간들이었겠지만 그 고통의 총화 덕에 선생은 작가로 거듭났다. 잔인한 말이지만 그 덕에 독자들은 평생 충만하게 된 셈이다. 살아생전 선생이 즐겨하지 않은 것 세 가지는 여행, 쇼핑, 기계사용이었다. 글 쓰는 사람, 더구나 많은 노동시간을 필요로 하는 소설가는 글 이외의 것을 생각해서는 그 뜻을 이루기 어렵다. 원고지 십만매 채우기는 여행과 쇼핑에서 멀수록 가깝기 때문이다. 선생에게 유일하게 허용되는 문명의 이기는 몽블랑 만년필과 선풍기 두 대였단다. 힘들 때마다 사마천을 생각하며 썼다는 선생의 올곧은 작가정신 앞에서는 할 말을 잃게 된다.
`모진 세월 가고 / 아아 편안하다 늙어서 이리 편안한 것을 / 버리고 갈 것만 남아서 참 홀가분하다` 끌어안고 가는 불편함이 아니라 버릴 수 있는 홀가분함을 찬미할 수 있는 노년은 아무에게나 주어지는 게 아니다. 대부분 회한으로 어룽진 삶을 회고할 때 선생은 편안히 놓고 가는 삶을 노래했다. 구비 친 한 생을 꽃 피운 자만이 누릴 수 있는 여유다. 한 땀 한 땀 수놓았던 선생 행보에 아우라가 느껴지는 한 말씀, `오라는 데 다 가고 만날 사람 다 만나면 글은 언제 쓰노?` 굳건한 선생의 기상 앞에서 숙연한 아침을 맞는다.
/김살로메(소설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