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버 시장은 소녀상 안을 의결할 당시에도 시의원 5명 중 유일한 반대자였다. 시립 공원 계획이 미완성인데다 무엇보다 글렌데일 시가 국제적인 논쟁에 휩싸이는 게 부담스러웠기 때문에 반대했다고 했다. 인간적 감성으로 접근하면 괘씸하지만 한 도시의 수장으로서는 충분히 그런 고충을 가질 만도 하다. 하지만 소녀상이 세워진 지 두 달 이상이 된 지금에 와서 긁어 부스럼 식 인터뷰를 한 건 이해가 되지 않는다.
글렌데일에 위안부 소녀상이 건립된 건 아픈 역사를 공감하는 아르메니아인들의 역사의식 때문이었다. 인구 20만의 글렌데일시는 삼분의 일 이상이 아르메니아인으로 구성되어 있다. 그들의 역사도 우리만큼 핍박과 설움으로 가득하다. 1천년 이상을 페르시아, 동로마제국, 아랍, 몽골, 오스만 투르크 등의 지배를 받았다. 살아남기 위해 세계 각지로 흩어졌지만 끈질긴 민족성은 버리지 않았다. 일차 세계 대전 때 독립을 요구했다가 투르크 제국에 의해 강제 이주도 당한데다 인종 청소라는 대학살도 피해갈 수 없었다. 살아남기 위해 미국으로 유입된 사람들 중 많은 이가 이 글렌데일 시에 모여 살고 있다.
이 도시의 핵심 구성원인 아르메니아인들이 소녀상을 세우는 데 적극성을 보인 것은 조금도 이상할 게 없다. 아픈 역사에 대한 연대와 공감은 소녀상 건립 이상의 것도 가능케 할 수 있다. 소녀상에 대한 일본 우파들의 트집도 볼썽사납고, 그들에게 휘둘리는 시장의 대응방식도 세련되지 못했다. 피해자의 소리를 귀담아 듣는 가해자의 양심, 그것이 진정한 역사의 역지사지가 아니던가.
/김살로메(소설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