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대로 날갯짓을 해 본 적이 없다. 다이어트와 운동을 겸한다는 결심도 작심삼일이요, 매일 정해진 분량의 원고를 쓰겠다는 구호도 허방이기 일쑤고, 독촉 받는 원고를 마감 시간에 맞추는 것조차 힘겨운 일상이다. 주변인들이 뚝심 있게 제 날개를 펼치는 것을 보면 그저 존경스러울 뿐이다. 만날 그 정신만은 벤치마킹한다. 하지만 여러 핑계 때문에 실천이 될 리 없다. 그 핑계의 전부는 알고 보면 게으름이다.
뉴질랜드 은화를 보면 키위새가 나온다. 부리가 길고 후각이 발달한 그 새는 날지 못한다. 아주 오래전 먹을 것이 풍부했던 뉴질랜드 땅의 키위새에게는 천적이 없었다. 굳이 날아다니지 않아도 먹을 것 천지였다. 자연히 날개는 퇴화했다. 하지만 인간이 그 땅을 접수하면서 키위새에겐 재앙이 따랐다. 인간과 함께 들어간 고양이, 들쥐의 먹이가 되고, 인간의 손쉬운 사냥감이 되는 바람에 한때 그 개체수가 멸종 위기 수준으로 줄었다. 키위새에게 날 수 있는 힘이 있었으면 그리 당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천적 만들지 않는 삶은 일견 평화로워 보이지만 그 평화로움이야말로 제 영혼을 갉아 먹는 소리 없는 아우성이다. 묵묵히, 또는 소란스럽게 제 삶의 에너지를 분출하며 사는 모든 이들을 제 삶의 긍정적 천적으로 모실 일이다. 그들이 이끄는 일상의 방식에 내 영혼의 밥술을 얹어 조금이라도 자극을 받고 싶다. 퇴화하는 날개 끝에 얻은 안주는 무서운 습관이기 십상이다.
/김살로메(소설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