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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사회의 `아름다운 역설`은 무엇일까

배한동 경북대 명예 교수
등록일 2013-08-05 00:50 게재일 2013-08-05 19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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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배한동 경북대 명예 교수(정치학)

최근 슬라보예 지젝은 `공산주의는 자본주의와 결혼 한다`, `자본주의는 민주주의와 이혼 한다`는 `아름다운 역설(Beautiful Irony)을 발표하였다. 1960년대 다니엘 벨은 `이데올로기의 종언 시대`를 선언하고, 1980년대 프란시스 후쿠야마(61)는 `역사의 종언`을 통해 공산사회는 패배하고 자본주의가 승리한다고 주장하였다. 그러나 아직도 지구 곳곳에서는 이데올로기적 함정을 탈피하지 못하는 현실에서 지젝의 역설은 흥미이상의 관심을 끈다.

철학자 지젝은 슬로베니아 출신이며 정신분석학, 철학, 명예박사까지 3개의 박사학위를 보유하고 자칭 `복잡한 공산주의자`이다. 그는 80여권의 저서가 있으며 미국 프린스턴 등 10여개 대학에서 강연하였으며 지난달 30세 연하의 여인과 네 번째 결혼할 정도로 분방하다. 영국의 월간지 프로스펙트는 2013년 세계의 사상가중 철학부문 1위로 선정할 정도로 명성을 얻었다. 작년 6월 서울 경희대 강연에도 만 명이 신청하여 4천500명이 강연장을 메웠을 정도다.

마르크스 신봉자인 지젝은 북한 김정은 정권을 사회주의나 유교로도 해석되지 않는 `아주 무섭고 별 난 (terrifying eccentricity) 정권`이라고 지적했다. 그러나 그의 `공산주의가 자본주의와 결혼 했다`는 그의 역설은 북한 땅에도 예외 없이 적용될 조짐이 보인다. 북한은 미국에 대해 반제 혁명노선을 선전하면서도, 자본주의 원조인 미국과 교제하기 위해 안간 힘을 쓰고 있다. 북한은 평화보장이라는 명분으로 내심 미국 자본주의와 결혼하기를 원한다. 내가 잘 아는 서울의 L교수는 남북의 관계가 좋을 때 북한 김일성대학에서 잠시 자본주의 강의를 한 적이 있다. 북한당국은 홍콩이나 베이징으로 자본주의 경영학 유학을 보낸다는 소문까지 들린다. 북한에서 자본주의적 독충은 막겠다는 취지로`모기장이론`을 제시했지만 그들은 자본이라는 시원한 바람은 긴용함을 역설적으로 말한 것이 아닌가.

지젝의 공산주의가 자본주의와 결혼한다는 역설은 북한 당국의 정책 면에서도 감지된다. `강성 대국 건설`이라는 슬로건 아래서도 식량문제도 해결치 못하는 북한은 자본주의적 방식을 궁여지책으로 수용할 수밖에 없다. 북한이 1990년 후반부터 도입한 합영법이나 특구 정책도 중국식 사회주의적 자본주의방식의 모방이다. 단 북한은 사회적 인프라와 자본의 부족 등으로 소기의 성과를 거두지 못할 뿐이다. 북한이 개성공단이나 금강산 뿐 아니라 중국 자본에 의해 나진항을 열고, 황금 평 특구를 추진하는 것도 생존을 위한 불가피한 선택이다. 북한은 이미 해외의 북한 식당과 개성 공단 수입, 금강산 입장료라는 외도 경험을 통해 자본의 맛을 톡톡히 보았기 때문이다.

북한의 이러한 자본주의 바람은 주민들의 생활과 의식 속에서도 쉽게 발견될 수 있다. 프랑스에 사는 나의 지인 A씨는 평양의 조카에게 트럭 한대를 사주어 장사를 잘하고 있다고 자랑하였다. 호주 시드니의 B씨는 회령의 어느 산골에 양을 수 십 마리 사주어 그곳을 드나들며 우대 받는다는 소식도 전했다. 북한의 늘어나는 종합 시장에서 소리 소문 없이 돈을 번 부자들도 늘어나고 있다. 탈북자들은 북한의 시장에는 한국의 초코파가 인기 있고, 한국의 고급품까지 암매된다는 증언하고 있다. 탈북 영화감독이 증언하는 데로 북한 영화에도 부분적으로 금지된 포옹장면이 등장하고, 키스신과 베드신까지 등장하여 인민들의 인기가 대단하단다. 남한의 인기 드라마뿐 아니라 유행가까지 CD로 보급되는 `북한식 한류`를 통해 주민들은 자본주의에 더욱 유혹 받고 있는 것이다.

이처럼 지젝의 아름다운 역설은 북한 땅에도 퍼져가고 있으나 막기 어렵다. 북한 지도층뿐 아니라 하부 주민들도 벌써 의식의 내면에는 소유욕이라는 자본주의에 바람에 흔들려 이미 결혼할 준비가 되어 있다면 지나친 논리의 지나친 비약일까. 이러한 시기 우리는 북한의 변화를 너무 조급하게 기다릴 것은 없지만 그들의 변화를 촉진하기 위한 정책적 처방만은 서두를 필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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