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번 한·중 정상회담 성과 중 양국의 인문 사회 분야의 교류 확대에 관한 합의를 주목할 필요가 있다. 지난 2일부터 5일까지 중국의 산동 성 연태대학교에서 `동북아 평화·공존·번영`을 위한 한·중 국제 학술 대회가 성황리 개최되었다. 한·중 정상 회담후의 첫 학술 행사 때문인지 현지에서의 한국에 관한 관심은 어느 때 보다 높고 뜨거웠다. 이 학술회의에는 베이징, 상해 등 중국학자 20여명 뿐 아니라 베트남, 미얀마, 몽골에서도 여려 명의 학자가 참여했다.
이번 학술 대회에서는 무려 50여편의 논문이 발표됐다. 이 학술회의에는 중국 외교부 산하의 중국 국제 문제 연구소의 중진 연구자들뿐 아니라 우리 측의 통일 연구원, 국가 안보 전략 연구소 등 국책 연구기관의 학자들이 많이 참여했다. 그로 인해 양국 정부의 대외 정책 방향을 가늠할 수 있는 좋은 기회가 됐다. 이번 학술 대회에 참여한 학자들은 동북아 평화 문제에 관하여 상호 공존과 협력이라는 총론과 원칙에서는 대체로 공감하였지만 동북아 평화 구상이라는 각론에서는 아직도 상당한 괴리가 있었다.
학술회의 후 재중 한인회 회장이 마련한 만찬장의 건배 분위기는 화기애애하였다. 그러나 아직도 한국과 중국은 아직도 `가깝지만 먼 이웃`이라는 생각을 지울 수 없다. 한국의 일부 학자들은 동북아의 평화와 안정을 위해서는`북한의 비핵화`가 시급하며 중국의 역할을 주문하였다. 그러나 중국의 학자들은 지난 한·중 정상 회담의 결과처럼 `조선 반도(한반도)의 비핵화`는 인정하면서도 우리의 북한의 비핵 주장에는 동조하지 않았다. 심지어 중국 측의 어느 학자는 한·미합동군사 훈련에 대해서 매우 비판적인 입장을 표출하기도 했다. 그는 북한이 요구한 `북·중 합동 군사훈련`을 중국이 거부하였음도 밝혀 우리의 관심을 끌었다. 한국의 어느 학자가 중국도 이제 G2국가로서 세계적 기준의 인권 보장에 힘쓰고, 미국과 협력해야 한다는 요청에 일종의 `난센스`라는 시큰둥한 반응을 보이기도 하였다. 이는 중국학자들이 미국의 동북아 정책에 대한 강한 견제 심리를 표출한 결과라고 볼 수 있다.
그러나 중국의 학자들 중에는 한국의 외교나 정책에 우호적인 학자들이 늘어나고 있다. 어느 중국 교수는 과거 중국 내전 시 항일 공동전선을 펼쳐 중국 정부 수립에 기여한 항일 독립단체와 조선족의 역할을 결코 잊지 않는다는 주장까지 하였다. 또 다른 중국학자는 한국의 외교를 `한의 역사`로 풀이하여 주목을 끌었다. 그는 한국인들의 한(恨)을 `외침의 한, 가난의 한, 분단의 한`으로 규정하고 한국의 외교도 이를 극복하려는 외교이기에 주변국도 이를 이해하고 조응하여야 한다는 주장이다. 심지어 그는 나와의 사적 대화에서 6·25 전쟁 시 중공군의 한국전 참전에 대해서도 중국은 한국에 사과해야 한다는 입장까지 피력하였다. 이처럼 중국학자들 중에는 과거와 달리 지한(知韓)파, 친한(親韓)파가 늘어나고 있음은 고무적인 현상이며 환영할만한 일이다.
종합 토론에서 한국의 어느 학자는 한·중 관계의 이러한 입장 변화를 `조강지처와 새로 생긴 애인`사이의 고민이라고 풀이하여 좌중을 웃겼다. 사실 중국은 미국과의 튼튼한 방위조약을 맺고 있는 한국에 관심을 가지고 더욱 가까워지려는 경향이 강하다. 한국 또한 북한과 아직도`혈맹관계`를 맺은 중국이기에 더욱 짝사랑을 할 수 밖에 없다. 그러나 현재로서는 한국도 중국도 각기 조강지처를 버리고 새로운 동반자와의 밀월관계로 나아갈 수는 없는 것이다. 이 같은 입장이 한·중의 `전략적 동반자 관계`로 정리되고 있는 것이다. 우리가 북한에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는 중국에`북한의 비핵화`를 요구하고 중국 또한 한국에 대하여 `대미 자주 외교`를 요구하지만 그것이 어려운 이유도 여기에 있다. 이것이 한국과 중국이 처한 외교적 딜레마며, 앞으로 해결해야 할 숙제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