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린이 논술 강좌에서 가끔 내 한계를 시험당할 때가 있다. 과자 파티하자는 아이들의 요청을 나는 기꺼이 받아들인다. 신이 난 아이들은 자제심을 잃는다. 한참 자유로울 시기에 저들도 얼마나 힘들까. 잠시나마 해방구를 만들어주자 싶어 참기로 한다. 여기까지만 해도 괜찮다. 뒷정리 장면에서 실망이다. 책상과 의자를 바로 돌려놓겠다고 자발적으로 나서는 아이가 한 명도 없다. 과자부스러기와 음료 빈 통을 휴지통에 넣는 녀석도 물론 없다. 교육적 차원(?)에서 같이 치우자고 말해보지만 쇠귀에 경 읽기다. 정리정돈에는 관심조차 없다. 그저 부산스레 움직이고 떠들 뿐이다.
순간 자포자기하는 심정이 된다. 심리분석가들의 고백 중에 `거기 돈 많은 환자, 당신은 그냥 영원히 아프세요.`라는 내용이 있다. 분석가는 한 여자를 치료했고 그녀는 이제 휴양지에서 며칠 쉬어도 좋을 만큼 건강이 회복되었다. 그는 휴양지의 아름다운 풍경을 묘사하며 `이제 남은 것은 그녀가 툭툭 털고 일어나지 못하는 것`이라고 실언한다. 이것은 심리분석가 스스로도 눈치 채지 못한 무의식적 소원이었다. 말하자면 부자인 이 여자를 계속 치료했으면 하는 무의식이 표출된 것이었다. 이런 생각이 실제 의식으로 떠올랐다면 분석가는 그것을 세게 부정했을 것이다.
최선을 다해도 상대가 몰라줄 때 혹시 상대를 아픈 환자 취급하며 현실과 타협하게 되지나 않을까 살짝 두려워진다. 인간이기에 충분히 그럴 수 있다. 사심 없는 행복 지수가 영혼 없는 현실보다 백만 배는 소중하다. 따라서 행여 그런 포기하는 맘이 무의식중에라도 생기지 않기만을 바랄 뿐이다.
/김살로메(소설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