흔한 말로 우리는 자식에게 바라는 게 별로 없다고 말한다. 기본만 해주면 좋겠다고 입버릇처럼 말한다. 초등학생 학부모의 경우 내 아이가 영민해 선생님과 친구들의 사랑과 관심을 받았으면 좋겠고, 사춘기 자녀를 둔 부모는 아이가 그 무섭다는 `중2병` 정도는 거뜬히 넘기고 공부에만 몰두해줬으면 좋겠고, 청년기 자녀를 둔 부모는 내 자식의 취업기나 연애사가 무난하게 진행되었으면 좋겠고, 결혼한 자녀를 둔 부모일 경우 그들이 별 탈 없이 자식 낳고 살림살이가 빨리 나아졌으면 하고 바란다.
하지만 부모의 이런 바람이 기본이 아니라는 게 문제이다. 실은 내 욕망을 한껏 자식에게 투사하고 있는 것이다. 스스로 `기본 희망`을 지닌 자식이 못되었으므로 내 자녀만큼은 더 나은 쪽으로 나아가기를 기대하게 된다. 마치 부모인 자신은 스마트폰을 한 시도 손에서 내려놓지 않으면서, 자식만은 그것을 적당히 즐기는 절제심을 가졌으면 하고 바라는 심리와 같다.
좋은 부모 되기 관련 자료나 서적들은 하루에도 수없이 쏟아져 나온다. 하지만 부모자식 관계의 정답은 텍스트 안에 있는 게 아니다. 저마다 처한 환경과 가치관에 따라 달라질 수밖에 없다. 다만 경험에 빗대 서로 위안하자면 바라는 게 없을수록 좋은 부모가 된다는 것이다.
다소 비겁한 방법 같지만 내 욕심을 버릴 때 자식 걱정에서 벗어날 수 있다. 자정작용처럼 그들 스스로 제 갈 길을 모색하고 있을 터인데, 너무 부모가 앞서 걱정할 필요가 없다. 가만 기다려주는 것이 가장 좋은 방법이다. 하지만 그 기다림이 가장 어려운 것 중 하나 아니던가. 오늘도 자식 걱정이란 나비 수천만 마리가 각기 부모 머릿속을 휘젓고 날아다니는 건 그런 이유 때문이다.
/김살로메(소설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