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칸에 두 번이나 올 줄은 상상 못했죠”
21일(현지시간) 칸에서 만난 문병곤(30·사진) 감독은 이렇게 운을 뗐다. 그는 `세이프`(Safe)로 제66회 칸국제영화제 경쟁 부문에 진출해 25일 공식 상영을 앞두고 있다.
2011년 중앙대 졸업 작품인 단편 `불멸의 사나이`로 칸영화제 비평가주간에 초청받은 데 이어 두 번째로 칸에 입성했다. 학교 다닐 때 실습용으로 만든 한 편을 제외하고 그가 영화를 제대로 만든 것 자체가 고작 두 번째라는 점에서 놀라운 성취다.
이번 영화 `세이프`는 신영균문화재단 후원 공모에서 발탁돼 500만 원을 지원받고 문 감독이 자비 300만 원을 들여 제작비 총 800만 원으로 만들었다. 국내에서 열리는 미쟝센단편영화제 출품이 목표였단다.
지난해 9월 개포동의 주택가에 있는 한 지하 주차장을 빌려 나흘 동안 찍었다.
“그래도 편집을 4개월 동안 했으니까 열심히 만들긴 했어요.”
컨테이너 상자로 만든 한 평 남짓한 작은 공간을 불법 사행성 게임장 환전소로 꾸몄다. 이 공간이 영화 속에서 사건이 벌어지는 전체 무대다.
“돈이 없다 보니 다른 공간을 빌리거나 만들 수가 없어서 공간 이동이 없는 시나리오를 썼어요. 이곳이 불법 사행성 게임장이라는 사실은 화면 밖의 사운드로 넣었죠. 대신 이 안의 구조는 복잡하게 만들었어요. 좁은 데서 그나마 변화를 주려고요.”
영화는 불법 사행성 게임장 환전소에서 아르바이트로 일하는 여대생이 가불금을 갚기 위해 사람들이 환전을 요구하는 돈의 일부를 몰래 빼돌리면서 벌어지는 이야기를 그렸다. 여대생은 이 좁은 공간을 벗어나기 위해 발버둥치지만, 상황은 오히려 그녀가 예상치 못한 반대 방향으로 흘러간다.
“삶과 세상의 아이러니에 관심이 있어요. 조그만 환전소에서 벗어나려는 여대생이 노력을 하면 할수록 상황이 더 나빠지는 거죠.”
이 영화의 이야기는 현대 금융자본주의 시스템에서 거대 금융 자본이 사람들이 맡기는 돈을 굴려 수수료를 더 많이 챙기려 하다가 결국 파산하게 된 현실과 닮아 있다. 영화 제목인 영단어 `세이프`(Safe)는 안전하다는 뜻과 함께 돈을 보관하는 `금고`라는 의미도 있다.
“영화에 나오는 세 사람은 원래 나쁜 사람들은 아니에요. 문제는 환전소라는 공간에서 만났다는 것이죠. 환전소는 실제 노동이 없는 공간이잖아요. 돈이 오가면서 커미션만 받고 정작 그 밖의 노동하는 사람들을 착취하는 구조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사실은 그 시스템이 가장 문제라는 생각이 들었고요.”
작은 이야기 안에 자본주의 사회의 아이러니를 담은 보편성이 칸 현지에서도 좋은 반응을 얻고 있다.
“여기서 영화를 본 사람들에게 `코믹하다`는 얘기를 많이 들었어요. 영화가 비극으로 끝나는데도 유럽 사람들은 그걸 재미있게 받아들이더라고요.”
수상 기대를 하는지 묻자 그는 쑥스러운 듯 웃었다.
“지난번에도 평가는 좋았는데 상은 못 받았거든요. 그래서 이번에는 아무리 칭찬을 들어도 기대를 아예 안 하려고요. 영화제가 끝나면 다음 작품을 위해 또다시 고군분투해야 하니까 이 시간을 쉬는 기간으로 생각하려고요.”
칸에 두 번이나 오면서 배운 점으로 그는 국내에서 만날 수 없는 해외 관객들을 만난다는 점을 꼽았다.
“관객 반응이 굉장히 다른 것 같아요. 굉장히 예상 못 한 데서 웃고 그래요. 그런 경험은 창작자로서 눈을 넓히게 해준다는 점에서 참 좋은 것 같아요.”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