콜린 윌슨은 평론집 `아웃사이더`의 자전적 후기에서 이렇게 말했다. `아웃사이더의 근본 문제는 일상 세계에 대한 본능적인 거부이며, 그 일상의 세계가 무언가 지루하고 불만족스럽다고 느끼는 데 있다. 마치 최면술에 걸린 사람이 톱밥을 계란이나 베이컨이라고 믿으면서 먹고 있는 것처럼.`
톱밥을 계란이나 베이컨으로 생각할 정도로 몽롱한 상태가 되어야 아웃사이더의 대열에 낄 수 있고, 그럴 때 그들은 진정한 예술가의 반열에도 오를 수 있다. 이십대 초반의 노동자 콜린 윌슨이 처녀 평론집 하나로 온 세계를 강타한 것은 그 자신이 오롯한 아웃사이더였기에 가능했다. 그 어떤 정치적, 사회적 여건에 휘둘리지 않고 읽고, 자료를 수집했으며, 방대한 기록에 매진했다. 그 자신이 아웃사이더가 아니라면 이뤄낼 수 없는 작업이었다.
카뮈에서 니진스키에 이르기까지 실재했던 아웃사이더를 연구하는데 젊음은 치명적 약점이 될 수 있었다. 쾌락의 유혹과 가난의 절망을 동시에 이겨내며, 저토록 이른 나이에 인간은 무엇인가에 대해 필사적으로 제 청춘을 투자했다는 것만으로도 내겐 불가사의한 예술가로 각인된다.
아웃사이더들은 세속적인 성찰을 거부한다. 자발적이고도 정신적 노역을 즐기는 그들에게 이 세상은 무가치해서 저항할 만한 사유가 된다. 시인이나 사상가들이 평범함을 넘고, 실재하는 세계를 거부하는 몸부림을 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그들에게 일상적인 삶은 진정한 삶이 아니라 표류이다. 떠도는 바다 위의 군중을 본래적 단독자의 삶으로 환원시켜야 한다는 의무가 강할수록 그는 아웃사이더에 가깝다. 톱밥이 계란으로 보이는 아웃사이더들의 저항이 거셀수록 예술은 발전한다.
/김살로메(소설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