웬만한 `자뻑` 환자가 아니라면 구양수·소동파 급 문장가도 자신이 쓴 글에 만족하지 못할 것이다. 세상에 완벽한 글은 없기 때문이다. 익히 선인들이 백 번 이상의 퇴고를 강조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무엇을 어떻게 써야 할 지 잘 모르는 초보일 때는 쓴다는 자체가 신기하고 재밌을 수가 있다. 어디가 어떻게 잘못되었는지 생각할 겨를 없이 오직 쓰기에 집중하게 된다. 참으로 행복한 시기이다. 하지만 어느 정도 글쓰기에 이력이 붙은 경우엔 이야기가 달라진다. 행복 끝, 불행(?) 시작이다. 글을 보는 눈은 깊고 넓어졌는데, 쓰는 능력은 거기에 훨씬 못 미친다. 괴로운 나날이 이어질 수밖에 없다. 한 편의 글을 완성해놓고도 안절부절못한다. 제 부족함을 알기 때문이다. 바로 그때 필요한 것이 합평이다.
찜찜한 글을 그러안고 있으면 완벽한 내 글이 될 수 없다. 부끄럽지만 동료들 앞에 내놓고 도움을 요청하는 게 낫다. 적어도 쓰는 능력보단 읽는 능력이 앞선 다수의 글동무들은 적확하고 다양한 시각으로 조언을 해줄 수 있다. 그 좋은 말들은 대개 글쓴이가 제 글에서 느낀 여러 문제점들을 재확인시켜준다.
불필요한 설명을 없애라, 주인공에게 생동감을 불어 넣어라, 주제를 상징하는 장면에 부연 묘사가 필요하다, 사실적 취재로 장소를 구체화 시켜라. 이 모든 충고는 글쓴이 자신이 이미 알고 있던 것들이다. 하지만 맘과 달리 한 번 만에 그런 약점 없는 글이 나오지는 않는다. 그러니 합평의 장에 나를 내놓고 채찍질 할 수밖에 없다. 나도 알고 너도 아는 그 문제점들을 점검하는 그 순간, 우리는 이미 제2의 창작에 들어선 거다. 좋은 글은 공감을 전제한다. 혼자 쓰고 혼자 고치기보다, 혼자 쓰고 누군가에게 보이는 것이 글 살을 찌우기에는 좋은 방법이다.
/김살로메(소설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