쓰는 글이 소설인 경우, 쓰는 자는 시간과 노동이란 이중고를 겪어내야 한다. 소설은 머리로 쓰는 게 아니다. 가슴으로 쓰는 것도 더더구나 아니다. 머리는 어떤 소설을 쓸 것인지 생각하는데 필요하고, 가슴은 활자화된 소설 앞에서 일어나는 여러 정서적 반응 기제의 확인처로서 기능한다. 소설 쓰는 데는 애오라지 묵직한 엉덩이와 예민한 손끝만이 필요하다. 많은 사람들이 소설 쓰기에 안착하지 못하는 이유 중의 하나가 이 두 가지를 끝내 넘어서지 못하기 때문이다. 여건이 안 되고 시간이 부족한 핑계가 마련되어 있는 한 점점 소설 쓰기는 멀어진다.
위의 얘기는 내 것이기도 하다. 시간은 한 번도 내 편이 되어 준 적이 없고, 글쓰기의 노동 강도 앞에 저질 체력은 언제나 무너졌다. 날마다 고군분투한 것 같지만 언제나 악마의 승리로 아침을 맞았다. 그렇다. 이 모든 건 핑계다. 묵직하게 의자에 앉아 있질 못하고, 예민하게 손끝을 놀리지 못한 자의 자기변명일 뿐이다.
삶이 빈약하니 사유가 빛날 리 없다. 대상을 바라보는 시선만 있고, 그것을 받쳐줄 철학이 없다보니 초조하게 시간만 보낸다. 내 안에 제대로 된 심지 하나 없어 독자에게 가더라도 공명하지 못할 소설, 이런 것에 대한 부담 때문에 쉬이 써지질 않는다. 지나친 자기연민이나 자기성찰은 소설 쓰기의 제일 방해요소이다. 그걸 알면서도 자책에서 빠져나오기 쉽지 않다. 그래도 오직 써라. 그 판단은 잠시 미뤄도 괜찮지 않겠나. 이렇게 스스로를 힐링하는 나날이다.
/김살로메(소설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