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체 문법을 차용한 이 논픽션은 단숨에 읽힌다. 1950년대 말 공산당 국제 교류기관의 편집자로 파견된 아버지를 따라 프라하의 소비에트 학교를 다니던 소녀 마리의 추억담이 주요 내용이다. 각 나라 공산당 핵심 간부들의 자녀로 이루어진 학교는 다국적 소수정예 멤버를 자랑한다. 인민의 평등과 해방을 위해 모였다지만 특권의식, 패권주의, 계급의식 등 부모 세대가 안고 있는 모순을 어린 마리와 친구들은 깊이 통찰하게 된다.
레닌에 관한 전기 영화를 보면서 마리 친구인 리차는 `레닌은 꽤나 잘살았나봐`라고 속삭인다. 혁명가로서의 이미지만 부각하다 보니 부르주아였던 생활상까지는 조작하지 못한 것을 어린 소녀의 눈은 잡아낸다. 레닌이 노동과는 거리가 먼, 소작료를 받아 생활한 지주 출신이라는 것은 나중에 알게 된다. 강의록은 연습장에 썼다가 노트에다 다시 정서해야 한다. `한 번 쓴 글은 도끼로도 못 깎아`내는 게 그들의 철칙이다. 쉽게 고칠 수 있는 연필로 쓴 것을 남에게 보여준다는 건 그들에겐 무례한 것으로 통했다. 지울 수 있는 것, 변화되는 것에 대한 강박적 두려움이 그들을 지배했던 것일까.
마리 여사의 경험담은 `다름`에 대한 수용 가치를 역설하고 있다. 이국 먼 동유럽의 교육 방식과 문화는 일본의 그것과 다르며, 그들 유럽 각각의 역사나 민족의식 역시 고유의 방식을 가지고 있다. 그 다양성을 인정하는 일도 중요하고, 그것을 넘어 다른 것을 접한 뒤에야 자기 영역을 넓힐 수 있다고 보았다. 역사와 시대의식이 녹아 있는 그녀의 프라하 시절 추억담은 나와 타자를 둘러싼 삶의 여러 방식에 대한 지평을 넓히는 자극제가 되어준다.
/김살로메(소설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