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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야는 정치 협상력을 향상시켜야 한다

등록일 2013-03-25 00:23 게재일 2013-03-25 22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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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배한동 경북대 명예교수·정치학

국회에서 여야간 지루하게 협상해온 정부 조직법이 52일 만에 국회를 통과했다. 미래창조과학부 신설과 종합 유선 방송 인허가문제가 여야의 정치적 쟁점이 됐기 때문이다. 이러한 국회의 파행적인 운행은 어제 오늘의 문제가 아니라 한국 정치의 오래된 고질병이다. 여야는 지난해 5월 폭력국회, 식물국회라는 악순환을 막겠다는 취지에서 `국회 선진화 법`을 통과시켰다. 그동안 비난 받았던 점거와 농성 등 여야의 물리적 대립의 원천인 본회의 의장 직권 상정의 의결 정족수를 2/3로 강화한 것이 법의 골자이다.

이 법의 입법 취지는 충분히 인정하지만 정부 조직법을 이토록 지연시킨 정치권에 대한 비판은 피할 길 없다. 국회 선진화 법이 비생산적인 `식물 국회`를 막으려다 정부의 기능까지 마비시킨 `식물정부`를 초래했다는 비판도 따랐다. 국회에서 법하나 통과시키지 못한 여당의 지도부의 리더십은 비판받아야 마땅하다. 또한 선진화 법을 악용한 야당의 발목 잡기라는 비판도 결코 면하기 어렵다. 이에 대한 개선책으로 여권 일각에서는 국회 선진화 법의 폐기나 개정을 위한 헌법 소원까지 거론했다. 그러나 모두가 성급하고 무분별한 주장이 아닐 수 없다. 더욱이 지난해 집권 여당과 현 박대통령이 주도해 제정된 선진화법의 잉크도 마르기 전에 개정 운운 하는 것은 정치 도의에도 어긋난다.

이제 의회는 선진화법의 법의 테두리 안에서 쟁점 사안에 대해 보다 신속한 합의와 타결을 이끌어내어야 한다. 이를 위해 여야는 이번의 입법 과정을 경험삼아 협상과 타협의 원칙부터 재정립해야 한다. 정당간의 정권 교체까지 경험한 우리의 의회정치는 아직도 타협적인 정치와는 거리가 멀다. 집권 여당은 권위주의적 패권주의 의식이 강하게 작용해 원칙과 소신이라는 명분으로 상대의 주장을 무시한채 밀어붙이려는 의지가 깔려있다. 야당 역시 명분과 투쟁을 빌미로 강경대응이나 투쟁을 전유물처럼 여긴다. 특히 과거 독재 정권하에서의 사이비 야당에 대한 불신과 선명성 경쟁이 이를 더욱 부추기고 있다. 여야는 차제에 국회 운영에 관한 새로운`역사적 타협`(historical compromise)안을 마련하기를 바란다. 이 타협안에는 여야의 정치에 관한 양심적인 자기 반성문이 포함돼야 할 것이다.

이러한 토대위에서 여야는 갈등과 투쟁의 정치를 협상과 타협의 정치로 바꾸려는 노력을 꾸준히 해야 한다. 여야는 선거 때마다 대통합의 정치, 상생의 정치를 외치지만 정치적 쟁점 사안에 대한 정치적 협상과 타협은 사실상 어렵다. 아직도 한국 정치는 `협상과 타협`을 `굴종과 야합 정치`로 매도하기 때문이다. 세월은 저만큼 앞서가는데 여야 지도부와 정치 협상력은 왜곡된 정치 전통에서 탈피하지 못하고 있다. 상생의 정치를 위해 우리 정치는 승자 독식이라는 제로섬 게임에서 공생의 파지티브 게임으로 정치의 판을 바꾸어야 한다. 정치는 결코 승자 독식의 제로 섬 게임도 아니고, 서로의 상처만 남는 네거티브 게임이 아니기 때문이다.

결국 여야는 상생의 정치를 위한 정치 협상의 의지와 능력을 키워가야 한다. 이를 위해 우선 정부 여당은 대통령이나 청와대 눈치 보다는 독자적인 자율적인 리더십부터 구축해야 한다. 이번의 지루한 여야 협상과정에서도 청와대의 입김이 강하게 작용했다는 정황이 그대로 드러나고 있기 때문이다. 야당 역시 고질적인 흑백논리로 강경일변도의 투쟁에만 몰입하지 않았는지 반성해야 한다. 야당이 특정이념이나 계파나 진영 논리에 함몰돼있을 때 협상은 더욱 기대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여당도 대통령이나 정부에 대해 비판적인 입장을 취할 수 있어야 한다. 야당 역시 사안에 따라 정부에 흔쾌히 지지하고 협조하는 협상력을 키워갈 때 선진적인 상생의 정치는 정착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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