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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화의 흔적 아직 그대론데 희망의 불씨 살리려 몸부림

임재현기자
등록일 2013-03-18 00:17 게재일 2013-03-18 4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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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항 산불발생 1주일<bR>어수선한 상황속 복구 중장비 굉음 요란<br>주민들 당시 상황 토로, 격앙 분위기도
▲ 포항 산불이 발생한 지 일주일여가 지난 17일 오후 피해지역 주민들이 조금씩 일상을 되찾아가고 있다. 다행히 화마가 비켜간 우미골의 한 주민이 연기와 분진으로 그을린 집에서 페인트칠을 하고 있다. /이용선기자 photokid@kbmaeil.com

`한순간 불장난에 재앙으로 몰아닥친 산불이 검은 생채기를 남기고 간 자리엔 불안과 원망, 그리고 불신이 엇갈리고 있었지만 재기를 향한 생명력이 겨울의 대지를 꿰뚫은 봄꽃들과 함께 살아나고 있었다.`

휴일인 지난 9일 오후 북구 용흥동에서 발화한 포항 도심 산불이 발생 1주일을 맞은 지난 16일 오후 2시 무렵.

뜨거운 악몽을 잊은 듯 줄을 이은 행락 차량이 한눈에 내려다 보이는 북구 우현동 옛 나루끝 일대 산비탈은 중장비 소리가 요란했다. 한주 동안 분주했던 자원봉사자들이 대거 빠져나간 자리는 철거전문업체의 인부들로 채워져 피해복구가 한창이었다. 마을 모퉁이 한 주택 거실의 열린 창문으로는 서너명의 주민들이 막걸리와 함께 지난 주말 당시의 급박했던 상황과 산불진화의 무용담을 나누는 목소리가 생생했다.

하지만 이곳에서 불과 500여m 거리의 참화 현장은 달랐다. 대동우방아파트 109동 아래 자연부락은 그날 밤 병상의 할머니와 단둘이 지내던 할아버지(79)가 이번 산불의 유일한 희생자로 발견된 곳이다. 무허가 암자 건물 2동과 아래에 맞닿은 노부부의 허름한 주택은 전소되고 석면 폐기물인 슬레이트 지붕은 망자의 뒤를 따라 인부들에 의해 마치 염습돼듯 비닐로 봉해진 채 뉘어져 폐기장 이동을 기다리고 있었다.

이 현장과 철조망 하나를 사이에 둔 아파트단지는 109동 맨 위층이 전소피해를 입었다. 1층 출입구 앞에서는 피해 관련자인 듯한 남녀 5~6명이 당시의 상황을 격앙된 목소리로 전하고 있었다.

이들은 갑자기 어깨 너머로 예기를 듣고 있던 취재기자의 신분을 물은 뒤 스마트폰을 빼앗아 녹음 파일이 있는지를 일일이 확인하며 극도의 경계심을 드러냈다. 이 가운데 한 중년 남성의`피해 세대의 열린 베란다문으로 날아든 불씨를 화재원인으로 단정지은 언론 보도는 잘못`이라는 주장에서 불신의 실마리를 짐작할 수 있었다.

조용한 긴장은 바로 옆 아파트경로당도 마찬가지.

20여명의 할머니 중 일부는 `당시 아파트 안에 사람이 있었다``아니다`를 두고 대화를 나누다 서로 눈치를 보고는 말을 아꼈다. 또 다른 할머니는 숨진 할아버지를 떠올리며 `아침 저녁으로 지나다니며 인사를 나눴는데`라며 말끝을 흐렸다.

여러 감정이 교차한 이날 취재는 7번 국도 건너편 용흥동 우미골로 이어졌다. 도심 한켠의 대표적 저소득 노년층 거주지인 이곳도 큰 피해를 입었다. 무허가주택에 세입자들이 태반인 이들 주민에게 앞으로 남겨진 생의 양만큼이라도 희망이란 남아 있을까?

우울하게 자문하며 좁은 길모퉁이를 도는 순간, 피해 입은 한 주택이 동네에서도 유달리 말끔하게 단장된 모습이 보였다. 막 작업을 마친 듯한 60대 초반의 주인은 숯검댕이 옷차림인 채 집 바로 앞 한뼘 화단에 피어난 개나리꽃에 물을 주고 있었다.

산불에 대인 아픈 마음들은 봄의 희망으로 재기의 몸부림을 치고 있었다.

/임재현기자 imjh@kbm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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