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복 71주년 잊혀진 미주 이민 1세대를 찾아서<br>⑷ 국내 이민 기념관을 찾아서
1903년부터 공식적으로 시작된 한국인들의 초기 농업이민사에는 국권 침탈 과정에서 민초들이 겪어야 했던 비극이 해외로까지 확산되는 생생한 면모들이 그대로 투영돼 있다. 이는 독립운동사 알기의 또 다른 방법이면서 국내 다문화사회를 제대로 볼 수 있는 반듯한 창(窓)의 역할도 한다. 현재 국내 체류 외국인은 140만 명으로 전체 인구의 3%에 이르며 오는 2020년에는 물경 5%를 넘을 것으로 예상된다. 그들을 우리 사회의 엄연한 한 부분으로 받아들이는 일은 우리 이민선조들이 겪어야 했던 고난을 대하고 느끼는 동병상련의 마음에서도 비롯된다. 본지는 사계에서는 국내 유일한 한국이민사박물관을 찾아 이민기념사업의 현주소를 점검하고 농협중앙회 등 국내 공공 박물관으로 사업을 확산할 필요성을 모색하고자 한다.
△인천 정체성의 또 다른 진면목
역사책을 즐겨 읽어본 사람이라면 인천 제물포항 개항의 계기가 된 강화도조약이란 단어 앞에는 `일본의 운요호 사건을 핑계로 한 굴욕적인`이란 수식어가 상투적으로 붙음을 잘 알 수 있을 것이다. 그 외에 인천이 지닌 이미지는 외부에 어떤 것일까? 실리를 추구해 일견 야박해 보이기도 하는 인천사람들을 지칭하는 `짠물`에다 한국전쟁의 인천상륙작전과 맥아더장군, 수출항인 인천항, 영종도 신공항에다 `먹방`의 시대가 되면서 `공화춘`으로 상징되는 차이나타운까지 겹쳐진다. 하지만 그 어느 것에서도 문화나 유장함과 같은 깊이가 느껴지지는 않는다.
하지만 인천의 월미도에 자리잡은 한국이민사박물관에 한번 가보면 인천사람들의 자부심의 깊이와 인천만의 정체성에 대해 충격에 가까운 자각에 이르게 된다. 영남권에서 찾아가기란 `멀고 먼`인천에 접어들면 몸이 파김치가 되지만 월미도에 이르는 순간부터 놀라움의 연속이다. 인천시는 상륙작전의 현장이라는 위상에도 불구하고 이제는 대관람차를 비롯한 놀이시설이 있는 곳쯤으로 외부에 알려진 월미도를 어느 새 정부로 부터`관광특구`로 지정받아 놓은 것이다. 리모델링된 구항은 이제 경관이 뛰어난 수변시설지구로 탈바꿈해 테마파크와 전망대, 해양분야 마이스터고교인 국립 인천해사고등학교 등을 갖추고 있다.
그중의 백미인 한국이민사박물관은 검단선사박물관, 송암미술관, 컴팩트스마트시티 등 인천시립박물관의 분관 중 한곳이다. 국내 최초의 관련 기관이라는 분관의 자부심은 본관인 시립박물관이 우리나라 최초(1946년)의 `공립박물관`이라는 위상에 뿌리를 대고 있다. 시립박물관은 현재 맥아더 동상 자리에 있던 옛 세창양행 사택 터에 시민들의 염원을 모아 개관했으나 상륙작전의 포화에 소실됐다.
△`최초`위상 걸맞은 `콘텐트 파워`
한국이민사박물관은 미주 이민 100주년을 맞은 지난 2003년 3월 추진위원회가 결성돼 2008년 6월 개관했다. 박물관 측 홍보 브로슈어의 내용 대로 `우리 선조들의 해외에서의 개척자적인 삶을 기리고 그 발자취를 후손들에게 전하기 위해 인천 시민들과 해외동포들의 뜻을 모아 건립`한 이력은 시설 내부 곳곳을 둘러보면 관람객에게 이심전심의 울림으로 전해진다.
총 4개의 전시실은 최초의 하와이 이민(`미지의 세계로`), 생활상과 본토 이주(`극복과 정착`), 해외독립운동과 기타 중남미 이민(`또 다른 삶과 구국 염원`), 750만 해외동포의 위상(`세계 속의 대한인`) 등 테마별로 조성돼 있다. 전시물의 수준과 전시 방법, 설명의 완성도는 범작들의 공력을 훌쩍 뛰어넘는다. 이민선 `코리아마루호`의 선상 메뉴, `집조`(여권), `방고`(하와이 사탕수수농장 노동자 식별표) 등 유물들은 학예사의 엄정한 고증과 세심한 큐레이팅으로 인해 저마다 제자리를 잡고 있다.
내부를 둘러보면 이민선조들이 `고립무원``창졸지간`에 맞닥뜨린 풍찬노숙의 시련에 마음이 저려오는 가운데 도대체 어떤 에너지가 이 박물관을 거쳐갔거나 재직 중인 구성원들을 움직였을까 하고 자문하기에 이른다. 기획을 맡았던 한 담당자에 의하면 가장 큰 도움은 재외동포들이었다. 이민사를 재구성하는 과정에서 너무 많은 동포가 기증을 해 감당할 수가 없을 정도였다. 심지어 한 재외동포는 전시관의 하와이 당시 복원 마네킹이 한복 바지를 입고 있자 오류를 지적하며 청바지로 갈아 입히도록 조언하기도 했다. 그럴 것이다! 평범한 지식인이나 샐러리맨에 머물러도 웬만하면 흠이 없을 이 박물관의 사람들을 고양시킨 힘은 해외 시련 동포들의 피와 눈물이었을 것이다. 학예사들의 역량도 마찬가지다. 기자는 미국 현지 취재 중 다뉴바 묘지에서 무연고자 김경선의 이름을 확인하고 고향에 대한 의문을 가졌다. 이름 세 글자만으로 그가 1904년 몽골리아호를 타고 하와이에 이민한 경주 노동동 출신임을 확인시켜 준 이는 이현아 학예사였다. 그는 기자가 출국에 앞서 하와이 이민자들의 전국 분포 통계를 문의하자 단행본`구한말 한인 하와이 이민`(인하대 출판부)의 해당 페이지를 복사해 턱 내놓았다. 평가가 너무 상찬인 감은 있으나 이 박물관의 태도도 남다르다. `지역사회와의 소통, 그리고 공존과 번영`. 평범하지만 현장에서 확인해보면 이는 실천되고 있다.
신은미 한국이민사박물관 관장은 “그동안 주로 하와이와 중남미 이민 위주로 전시를 했지만 앞으로는 러시아와 중국, 일본, EU 등 전세계의 동포를 대상으로 기획 중인 특별전을 상설화하는 것이 중장기 목표”라며 “들어오는 이민자들에 대한 전시도 함께 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농협박물관, 농업 이주사 조명해야
농협중앙회가 서울 충정로에 운영 중인 농협박물관은 전시물마다 풍부한 자금력이 흠뻑 배어 있는 시설이다. 하지만 이번 취재에서 한민족들이 뛰어난 `농업DNA`를 살려 미주와 러시아 연해주 등 해외에서 이룩한 성과들을 연구 및 수집한 결과들은 전시물에서 전혀 없었다. 미주 이민 1세대 중 천도복숭아인 넥타린을 개발해 거부가 된 김형순, `라이스 킹`김종림 등 농업 분야의 성공 사례는 국내 농업 경쟁력의 원천으로서 활용할 가치가 충분한 만큼 농협이 중심이 돼 재조명하고 기념해야 한다.
학문적 성과와 관련해서도 농협박물관 관계자에게 확인한 결과, 농협중앙회 전체에서 없는 것으로 드러났다. 추가로 농림수산식품부와 농촌진흥청 등에 문의하지는 않았지만 각종 문헌 조사의 결과로 볼 때 가능성은 희박해 보인다. 학계가 남아 있지만 농협중앙회 조차 성과를 공유하지 않고 있다면 관련 연구는 적어도 체계적이지 않다는 반증이기도 하다.
※이 기사는 지역신문발전위원회의 지원을 받았습니다.
글·사진/임재현기자 imjh@kbmae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