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회적이고 자유주의자인 유부남 오블론스키와 시골풍에다 소심한 귀족 노총각인 레빈이 식탁을 마주하고 앉았다. 태생적 생각이 다른 둘은 행동 양식도 다르다. 레빈의 생각은 이렇다. 부르주아들의 시간 보내기용 먹거리에 지나지 않는 굴보다는 치즈 얹은 흰 빵이 일용할 양식으로는 낫다. 시골에서는 일 하기 위해서 빨리 배를 채우려 하는데, 이곳 식당에서는 최대한 더디게 배를 채우기 위해 애쓴다. 육체노동과는 거리가 먼 인간들이 손톱을 기르고, 소맷부리에 접시만한 단추를 달고 다니는 게 못마땅하기만 하다. 시골 사람들에게 옷소매는 걷어 부치기 위해 있고, 손톱도 일하기 편하기 위해서는 짧게 자르는 게 낫다. 식당의 온갖 장식품도 충만한 영혼을 더럽히는 것 같고, 머리로만 일하는 인간들이 레빈에게는 야만스럽게만 다가온다.
그때 도회 남자 오블론스키가 나선다. 모든 교양의 목적은 쾌락에 있으니 너무 심각하게 받아들이지 말라고. 쾌락적 충만의 실용성을 충고하는 오블론스키에게 레빈은 조금 마음이 열린다. 레빈이 모스크바에 온 목적이 사랑을 쟁취하기 위해서이고 그것은 양심적 쾌락, 즉 충분한 교양의 목적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사랑은 온갖 자기혐오와 자기경멸을 넘어선 체험이어야 하지 고지식함이나 고상함에 머무는 망설임이어서는 안 된다. 레빈이 그 쾌락적 관문을 어떻게 통과할 것인지를 상상하며 읽는 것도 협의의 안나 카레니나를 읽는 재미의 하나이다.
/김살로메(소설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