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사회처럼 은연 중 위계질서가 몸에 밴 곳도 없는데 연배로 보나, 경력으로 보나 그분이 내게 그럴 필요가 없었다. 처음 한두 번은 재미로 그러나 싶었는데, 가만 보니 몸에 밴 자연스런 제스처였다. 조그만 데서 타인을 배려하는 사람이었다. 그것을 눈치 챈 나는 세 번째 잔부터는 무조건 그분보다 낮게 들었다. 그분이 눈치 채지 않게 속으론 끙끙댔다. 한 편의 코미디 같은 그 상황이 싫지는 않았다.
스위스 화가 파울 클레의 동판화 중에 `인사`라는 작품이 있다. 키가 크고 군살이라곤 없는 두 남자가 서로 낮게 인사하기 위해 경쟁적으로 고개를 숙인다. 허리를 있는 힘껏 앞으로 꺾어 바닥과 친구가 될 정도다. 하지만 얼굴은 서로의 옆모습을 향해 치켜들고 있다. 서로 계급이 낮다고 생각해, 한껏 고개를 숙이긴 하는데 상대를 의식하고 눈치를 보느라 차마 얼굴까지는 숙이지 못하는 것이다. 마음까지 낮아진 게 아니라 몸만 낮아지는 인사의 겉치레에 대한 풍자로 읽힌다.
관계란 상대적이다. 상대 쪽에서 `적의 없음, 배려할 것임, 군림할 의향 없음, 낮아질 것임, 친구가 되고 싶음` 이런 신호를 보내오면 내 쪽에서도 당연히 더한 우호와 존경으로 상대를 대하게 된다. 물론 그것이 지나치면 클레의 그림처럼 형식적인 것이 되지만 맘이 원하는 대로의 배려는 무척 자연스럽다.
누군가와 친구가 되고 싶다면 눈높이는 상대와 맞추고 술잔은 낮게 들어보자. 단, 고개를 지나치게 숙일 필요는 없다. 비굴을 감춘 게 들키거나, 과장된 마음이 드러나면 명징하던 술잔소리도, 맞춤한 눈높이도 부질없는 것이 되어버리니. 술잔 낮게 들고, 눈높이를 상대에 맞추러 오는 세상의 모든 친구들과 건배를!
/김살로메(소설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