몇 해 전 독일 기민당의 콘라드 아데나워 재단의 초청으로 독일의 여러 곳을 돌아 볼 수 있었다. 이 정당 재단은 통일된 독일의 모습을 견학시키기 위한 프로그램을 개발해 분단 한국의 젊은 국회의원, 교수, 언론인 30여명을 초청했던 것이다. 우리일행은 베를린 장벽의 현장, 통일 광장, 연방 의회, 정치 교육원 등 여러 곳을 방문했다.
지금은 행정 수도를 베를린으로 옮겼지만 옛 서독 수도 본의 의사당 방문은 아직도 나의 기억에 뚜렷하게 남아 있다. 당시 의사당은 누구나 의회 내부 까지 훤히 들여다 볼 수 있도록 투명한 유리로 건축돼 있었다. 의회 안내자는 독일인이면 누구나 의원들의 회의 장면까지 볼 수 있도록 설계됐다고 자랑했다. 우리가 방문하는 날 독일의 초등학생 수십 명도 의회 내부를 자유롭게 샅샅이 돌아보고 있었다. 권위의 상징처럼 육중한 모습으로 버티고 있는 우리의 여의도 국회 의사당과는 너무나 대조적인 모습이다. 이곳은 지난해 의회방문 시 나의 신분증을 보관하고서도 복잡한 수속 절차로 나를 짜증나게 했던 우리 의회와는 너무나 다른 공간이었다.
독일 의회 복도에는 무지개를 추상화 한 커다란 그림 한 점이 걸려 있었다. 그 의미를 이해하기 힘들어 물어 보니 독일의회내 여러 색깔의 정당을 상징한다고 했다. 사실 독일은 분단된 상항하에서도 공산당이 합법화될 정도로 다양한 정당이 공존했다. 극우의 히틀러 정당에서부터 극좌의 마르크스 정당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정당이 존립한 가운데 중도좌우파격인 기민당과 사회당이 교체 집권했던 것이다. 보수 우파, 종북 좌파 등 이념적 적대적 색깔 논쟁이 선거때 마다 등장하는 우리의 정당 정치의 현실과는 너무나 대조적이다. 상대 정당을 이념의 잣대로 부정하고, 선거 때 마다 네거티브 전략에 젖어 있는 우리 정치가 벤치마킹해야 할 것이다.
베버의 `직업으로서 정치`라고 볼 수 있는 독일의원들의 소명의식을 이 나라 의원들과의 만남을 통해 확인할 수 있었다. 하루는 한독 의원 연맹과 녹색당의원들이 주최한 간담회에 참석했다. 나는 조촐하게 마련된 간담회의 장에서 의자와 음료수를 나르는 허름한 차림의 독일 사무원에게 의원들이 언제 오느냐고 물었다. 그는 자신이 독일 녹색당 의원이라고 소개해 나는 깜짝 놀랐다. 명함을 서로 교환하였지만 한 동안 어색하고 미안한 마음을 지울 수 없었다. 청바지를 입고 환경 보호를 위해 수염도 기른다는 그의 모습은 아직도 남아 있는 신선한 추억이다. 수행원 없이 두툼한 서류 가방을 들고 참석한 독일의원의 모습과 넥타이 정장에다 금배지를 달고 비서까지 앞세우는 우리 의원들의 모습은 너무나 대조적이다.
그러나 간담회 과정에서 한반도 문제에 관한 독일의원의 관심은 매우 높았고, 날카로운 질문은 전문가 수준 이상이었다. 토론이 북한의 미사일 개발 문제에 이르자 어느 독일의원은 우리들에게 `노동 1호`미사일 사거리를 물었다. 우리나라 국방위원까지 답변도 못하고, 얼버무리는 모습에 자존심까지 상했던 기억이 있다. 그들의 모습은 검소했지만 전문성까지 갖춘 태도에서 우리는 통일 독일의 밝은 장래를 예측할 수 있었다. 국정조사때 피감기관에 큰소리 치고, 특권을 누리고 사치스러운 외유로 비난받는 우리 의원들이 시급히 배워야할 대목이다.
대선 후 여야 모두 정치 쇄신의 목소리는 요란하지만 그 실현 가능성은 여전히 희박하다. 정치 쇄신과 새 정치의 출발은 정치의 본산인 의회에서부터 출발해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우리 의회는 독일 의회민주주의를 벤치마킹해야 한다. 우리나라 의원들이 국민적인 지탄의 대상인 종신 연금제, 기초의원과 단체장의 공천, 면책 특권, 변호사 등 의원 겸직 등의 특권부터 스스로 내려놓아야 한다. 여기에서 우리나라 의회에 대한 국민적인 신뢰가 소생하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