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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 건너는 꽃잎처럼

김살로메(소설가)
등록일 2013-01-03 00:05 게재일 2013-01-03 19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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꽃잎 한 장 저 먼 강을 건넜다. 가만 속울음만 내었다. 강 아주 건너기 전, 그 꽃잎의 숙명은 마을마다 웃음꽃을 전파하는 일이었다. 웃음보란 깃발을 단 나룻배가 강어귀마다 정박할 때 많은 들꽃들은 그 꽃잎이 내려놓을 웃음보따리보다 앞서 웃음을 터뜨리곤 했다. 잘 웃지 않던 꽃들도 그 꽃잎이 머무는 동안엔 콧잔등에 실팍한 주름 만들어가며 어금니가 보이도록 웃어젖히곤 했다. 꽃잎 한 장이 뿜어내는 웃음 바이러스에 모두 감염된 덕이었다. 그 꽃잎 이름은 황수관이다.

그의 추모 특집 방송을 보았다. 웃기 위해 천만 번쯤은 노력했을 그의 안면 근육은 아주 자연스러웠다. 신바람 지수가 높아지면 가끔씩 호흡이 달리는 것 같았지만 그것조차 물에 젖은 토란잎 같은 목소리가 되어 시청자의 가슴을 촉촉이 적셔주었다. 세 번만 생각하면 오해도 이해하게 되고, 두 번만 이해하면 사랑하게 된다는 말이 인상적이었다. 심오한 철학을 주는 강연이 아니라 생활 속의 짜릿한 발견을 주는 이런 말씀이 피로에 쌓인 나 같은 이에겐 무척 도움이 되었다.

오늘만 해도 그렇다. 사진 한 장 편집하는데도 컴맹인지라 너무 자주 물으니 남편은 지쳐 나가 떨어졌고, 딸내미는 그나마 연민이 이는지 침착하게 다시 가르쳐 준다. 황 박사가 말했다. 늙은 부모가 까치란 새의 이름을 잊어버리고 세 번 되묻자, 아들은 `까치라니까, 몇 번이나 말해야 돼요?` 라고 쏘아 붙였다나. 하지만 그 아이 세 살 때, 스물 세 번이나 까치, 라는 새의 이름을 군말 없이 가르쳐준 이는 아버지가 아니었던가. 귀찮게 하는 자식마저 아름다운 추억으로 묘사할 수 있는 이가 부모인 것.

황수관 박사의 이런 촌철살인하는 위트와 따뜻한 유머를 더 이상 만날 수 없다는 게 아쉽고 서럽다. 살짝 건네는 쪽지 같고, 걸터앉기 편한 의자 같던 웃음 전도사를 새해부터 추모해야 한다는 게 너무 가슴 아프다. 문태준의 시처럼 `나 혼자 꽃 진 자리에 남아 시원스레 잊지도 못하고` 며칠을 앓게 될 것이다.

/김살로메(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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