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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칙·신뢰의 정치로 아버지 이어 청와대 주인으로

박순원기자
등록일 2012-12-20 00:44 게재일 2012-12-20 3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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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근혜 당선자가 걸어온 길

18대 대통령으로 선출된 박근혜 당선자의 별명은 `수첩공주`다. 고 박정희 전 대통령의 맏딸로 어머니인 고 육영수 여사의 피습 이후 실질적인 퍼스트레이디의 역할을 수행했기 때문이다.

올해 만 60세인 박 당선자는 과거사 인식에 대한 비판과 `불통` 이미지를 넘어 두 번째 대권 도전끝에 대통령에 당선됐다.

아버지 박정희 전 대통령의 후광 속에 정치를 시작했다는 평가를 받았지만 5선 국회의원을 거치며 고수해 온 `원칙·신뢰`를 가장 큰 정치적 자산으로 삼아 대권까지 거머쥐었다.

이에따라 박 당선자는 건국 이후 첫 여성 대통령이자 부녀(父女)가 모두 국가 최고지도자가 되는 기록을 남기게 됐다.

18년간 `영애·퍼스트레이디`-18년간의 칩거 `파란만장` 개인사

박근혜 당선자는 1952년 2월 2일 대구에서 박 전 대통령과 부인 육영수 여사의 장녀로 태어났다. 초등학교 1학년 생활기록부엔 `온순하고 침착하고 차근차근하며 실수가 별로 없음. 남에게 호감을 받으나 특정한 아동들과만 노는 습관이 있음`이라고 평가됐다.

아버지가 대통령에 당선된 1963년 2월부터 청와대에서 살았다. 1964년 입학한 성심여중 1학년 2학기부터 3학년 졸업할 때까지 반장을 맡았고 성적도 줄곧 반에서 1등이었다. 2학년 때 검사한 지능지수는 127이다. 성심여고에서도 1학년부터 3학년까지 반에서 1등이었다.

1970년 서강대 전자공학과에 입학했다. 등·하교 때 신촌 로터리에서 관용차를 타고 내린 뒤 학교까지 걸어 다녔다. 경호원들도 정문까지만 따르도록 했다. 대학 4년 성적은 4점 만점에 3.82로 수석 졸업이었다

그러던 박 당선자는 프랑스 유학을 떠난 뒤 6개월 만인 74년 8월 15일 귀국 길에 올랐다. 어머니의 사망 소식을 듣고서였다. 22세의 `퍼스트 레이디`는 그때부터 5년간 공식 행사에 참석하고 외국사절을 영접했다. 오전 7시30분 아버지의 아침상을 준비했고, 중앙정보부의 일일 특별보고를 아버지와 함께 읽으며 국사(國事)를 얘기했다.

1979년 10월 27일 새벽 2시 잠옷차림으로 깨어난 박근혜는 김계원 비서실장이 “각하가 서거하셨습니다”라고 하자 “전방의 상황은 어떻습니까”라고 말문을 열였다.

그리고 영남대 이사장과 정수장학회 이사장 등을 지내며 인고의 세월을 보낸다.

1998년 정치권 등장..2007년 경선패배→`대세론`으로 부활

박 당선자는 18년간의 `칩거` 이후 46세인 지난 1998년 4월 대구 달성에서 치러진 15대 국회의원 보궐선거에 한나라당 후보로 출마해 당선되면서 정치 전면에 등장한다.

2000년에는 총재 경선에서 이회창 전 총재에 이어 2위로 부총재로 당선됐다. 2001년 상향식 공천, 당권·대권 분리 등을 골자로 한 `7대 당 개혁안`이 받아들여지지 않자 탈당해 `미래연합`을 창당했다. 이 기간 북한을 방문, 당시 김정일 북한 국방위원장을 만나 `남북 철도연결` 등을 논의하기도 했다.

2002년 복당한 박 후보는 노무현 대통령에 대한 탄핵 역풍 등으로 풍전등화의 위기에 처했던 2004년 3월 당 대표를 맡아 `천막당사`로 배수진을 쳤다. 과거를 반성하고 모든 기득권을 내려놓겠다는 뜻이었다. 이어 치러진 4·15 총선에서 열린우리당의 싹쓸이 예상을 뒤엎고 121석을 확보하는 성과를 올렸다.

이후 2년3개월간 당 대표를 지내면서 열린우리당을 상대로 국회의원 재보선과 지방선거에서 완승을 이끌어냈다. 이런 잇단 선거 승리를 계기로 `선거의 여왕`이라는 별명을 얻기도 했다.

2007년에는 첫 대권 도전에 나섰지만, 당내 경선에서 이명박 후보에게 석패하면서 분루를 삼켰다.

그러나 이후에도 40% 안팎의 높은 지지율로 이른바 `대세론`을 형성, 당내 친박(친박근혜)계의 정점에서 이명박 정부와 `불편한 관계`를 이어갔다.

2009~2010년 정국을 달궜던 세종시 수정안 논란 당시 이 대통령과 달리 박 당선자는 “약속은 지켜야 한다”며 원안을 고수했다. `신뢰`를 정치의 근간으로 내세운 박 당선자는 `판정승`을 거뒀고, 이후 다시 당을 장악한다.

그는 2011년 10·26 서울시장 보궐선거 패배 이후 홍준표 대표가 사퇴하면서 비대위원장으로 취임한 뒤 2012년 4·11 총선에서 예상을 뒤엎고 152석을 차지하는 대역전승을 거두며 당의 유력 대권주자로 입지를 굳혔다. 그리고 이번에 사상 첫 여성 대통령으로, 부녀 대통령으로 기록되게 됐다.

/박순원기자 god02@kbm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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