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들은 오늘을 산다고 믿지만 실은 어제에 갇혀 산다. 오늘을 버리고 싶다는 것은 어제를 생각하고 싶지 않다는 의미이고, 오늘을 부여잡는 건 어제로 돌아가고 싶다는 완곡한 바람이다. 좋은 쪽이든 나쁜 쪽이든 오늘의 나는 어제의 나였으므로.
삶이란 이처럼 어제와 오늘이 얽힌 유기적 총체이다. 아고타 크리스토프는 소설`어제`에서 과거와 현재가 맞물리는 지난한 삶을 무심한 듯 냉정한 필치로 그린다. 장식 없고 건조한 그녀의 문체는 화려하고 다사로운 문체보다 훨씬 더한 감동을 준다. 창녀의 딸이라는 과거도, 노동자라는 현재도 연인에게 온전히 이해받지 못하는 주인공의 막막함. 거기다가 연인과 같은 아버지를 뒀다는 혼자만의 비밀까지 감당해야 하는 주인공은 스스로를 제외하곤 어디서도 제 운명을 이해받지 못한다. 끝내 고통스런 어제인 연인과 헤어질 수밖에 없다. 독자로서 가슴이 아픈 건 운명의 가혹함이라는 신파가 아니라 산다는 것의 비루함에 이야기의 초점이 가 있기 때문이다. 결코 과거를 파먹으며 자학하지 않는다. 사랑을 포기한 그 자리엔 현실이란 오늘이 배치되어 있다. 말하자면 죽도록 사랑했던 연인이 떠나도, 더 이상 꿈꿀 이유가 없어도 인간은 어떻게든 현실과 타협해서 살아가게돼 있다. 다만, 어제에 발목 잡힌 오늘이 그 어제를 영원히 밀어내지는 못한다. 어제에 저당 잡히는 걸 견딜 수 있는 건 그것이 잃어버린 사랑에 대한 최소한의 예의이기 때문이다.
/김살로메(소설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