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행잎 날리고, 찬바람 돋던 어느 오후였다. 현관 앞 복도에 세워둔 자전거가 없어졌다. 새 것이기도 했지만, 자전거 타기로 스트레스를 해소하던 딸내미를 위해서라도 되찾고 싶었다. 그 즈음 아파트 단지 안에서는 자주 자전거가 없어졌다. 분명 상습 절도범이 계획적으로 한 짓이라고 생각했다. 여기까지 미치자 자전거를 찾고 싶은 것 이상으로 그 절도범 얼굴이라도 확인하고 싶어졌다.
아파트 관리실의 협조를 얻어 CCTV를 확인했다. 엘리베이터 안을 비추는 화면에 드디어 자전거 도둑이 떴다. 한데 화면 속 얼굴은 아무리 봐도 내가 열고 있는 논술교실의 회원이었다. 모범생이었지만 화면에 그렇게 나온 이상 믿을 수밖에 없었다. 캡처한 사진을 그 아이에게 내밀었다. 하지만 그 아이 짓이 아니었다. 비슷하게 생긴 다른 애 모습이라고 그 아이가 확인해주었다. 선명치 않은 화질을 믿고 착하디착한 아이를 자전거 도둑으로 오해 하다니. 돌이킬 수 없는 잘못이었다.
사과를 한다고 했지만 내 사과는 충분치 않았다. 사과라는 건 상대가 온전히 받아줄 때까지 해야 한다. 하지만 진심을 전한다는 게 쉽지만은 않았다. 몇 년 뒤 한 고등학교에 특강을 나갔을 때 그 아이를 만났다. 맨 앞자리에 앉아 있던 그 아이를 보자 반갑고 미안한 마음에 계속 눈길을 주었다. 하지만 그 아이는 나를 외면했다. 아직 나를 용서하지 않은 게 분명했다.
사과를 했지만 상대방이 맘으로 받아들이지 않았다면 그 사과는 계속되어야 할 것이었다. 당시 무조건적이고 깔끔한 사과를 하지 못했던 내 맘을 용서하지 못하겠다. 한참 지난 일이지만, 노란 은행잎 뒹굴고 찬바람 스미는 날이면 내 컸던 실수와 미흡했던 사과가 떠올라 마음이 편치 않다. 몇 번이고 계속해도 모자랄 나의 사과.
/김살로메(소설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