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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옥과 천국

김살로메(소설가)
등록일 2012-11-02 20:53 게재일 2012-11-02 23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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업무 차 타지에서 온 친구를 만났다. 오랜만에 본 그녀는 무척 야위었다. 통통하게 볼 살이 올랐을 때만을 기억한 내겐 그 모습이 충격이었다. 다이어트나 운동을 해서 뺀 살은 아니었다. 아니나 다를까, 극심한 스트레스가 주범이라고 실토했다. 일은 하나도 힘들지 않은데 관계에서 오는 갈등으로 마음고생이 심하단다. 지옥이 따로 없다고 했다.

맞다. 타인은 지옥이다. 희곡`출구 없는 방`에서 사르트르가 그 사실을 확인시켜 주었다. 한 남자와 두 여자가 있다. 그 셋은 한 호텔 같은 방에 배정을 받는다. 출구 없는 그곳에서 세 명은 평생 같이 살아야 한다. 이 호텔은 다름 아닌 죽은 자들의 감옥인 지옥이다. 한데 아무리 기다려도 불바다는커녕 고문조차 없다. 하지만 곧 깨닫는다. 그들 서로가 불바다요, 고문자라는 것을. 끓는 납에 넣는 것보다 부젓가락으로 쑤시는 것보다 더한 지옥이 타인이었던 것.

싫든 좋든 타인과의 관계없이는 살아가기 힘들다는 것을 우리는 경험으로 알고 있다. 하지만 그 타인이 필요악으로 느껴질 때가 있다. 이럴 때 사르트르 같은 철학자가 나타나`타인은 지옥`이라고 말해주니 얼마나 위안이 될 것인가. 비록 `닫힌 공간`이라는 전제가 있긴 하지만 통렬한 발견이 아닐 수 없다.

누구에게나 현실은 힘겹고, 관계는 피로하다.그렇다고 타인 없는 천국이 가당키나 한가.`타인이 곧 지옥`이긴 하지만 `타인 없는 천국`도 삼일천하에 지나지 않는다. 사르트르를 비틀어`혼자만의 방`이란 희곡을 쓴다면 그것이야말로 더한 지옥이 될 것이다. 말하자면 타인은 지옥인 동시에 천국인 셈이다. 물론 지옥이 아닌 천국일 때의 타인이 더 많다. 그 힘으로 우리는 일상을 버텨낼 수 있다.

살이 빠질 만큼 상처 입으면서도 우리가 타인의 지옥에서 빠져나오지 못하는 것은 사회적 동물인 인간 운명 때문이다. 상처와 치유 즉, 지옥과 천국의 다른 이름인 그대 타인들.

/김살로메(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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