속독하다 보니 자연스레 다독이 되는 사람들은 많다. 그건 이상할 것도 부러울 것도 없다. 하지만 다독자이면서 정독하는 사람들은 드문데, 그런 사람들이야말로 책 읽기의 고수들이다. 책에 관한 온갖 정보와 리뷰를 공유할 수 있는 인터넷 서점에 가면 그런 사람들이 넘쳐난다. 밥벌이로서 직장이 있을 터인데, 많이 읽으면서 깊이까지 있으니 저들이 사람일까 싶을 때가 한두 번이 아니다.
많이 읽으면서 깊이까지 있으면 좋겠지만 그게 안 되는 나 같은 이는 차선책으로 적게 읽어도 제대로 읽어야겠다는 생각을 해본다. 많이 읽으면서 얕게 읽는 것보다는 그게 낫지 않겠나. 고수가 못될 바에야, 한 달에 삼십 권 읽는 것보다 세 권을 제대로 읽는 게 더 나은 독서법일 테니까.
제대로 읽는다는 명분하에 내게 눈도장 찍힌 책들은 대개 지저분해져 있다. 한 문장 한 문장에 매료된 상태에서는 밑줄 긋지 않을 수 없고, 접고 싶은 부분 또한 시시각각 나타나며, 옮겨 적고 싶은 구절엔 별표들이 넘쳐난다. 책이 더러워진 만큼 애정의 강도도 높아진 것이다. 한 번 읽고 책장 안에 모셔진 것보다 느리게 보듬어 닳은 것이 제대로 사랑받은 것들이다.
빨리 읽고 많이 읽는 것은 중요하지 않다. 적게 읽더라도 깊게 다가와 읽는이의 의식을 한 방 때려줄 수 있는 서늘함, 그것이 제대로 된 읽기이다. 카프카가 `변신`에서 이런 말을 하지 않았던가.`책이란 무릇, 우리 안에 있는 꽁꽁 얼어버린 바다를 깨뜨려버리는 도끼가 아니면 안 되는 거야.`
/김살로메(소설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