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느리고 깊게 읽기

김살로메(소설가)
등록일 2012-10-08 20:48 게재일 2012-10-08 23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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속독(또는 다독)이냐 정독이냐에 대한 답은 없다. 취향의 문제인데다 처한 상황에 따라 다르기 때문이다. 빠른 시간 안에 많은 정보를 습득해야 하거나 이야기의 흐름에 관심이 많으면 자연히 속독 쪽으로 치중하게 된다. 반면 읽어내야 한다는 강박이 없으면서 문맥 하나하나에서도 소우주를 발견할 만큼 의미를 부여하는 치라면 정독이 어울린다.

속독하다 보니 자연스레 다독이 되는 사람들은 많다. 그건 이상할 것도 부러울 것도 없다. 하지만 다독자이면서 정독하는 사람들은 드문데, 그런 사람들이야말로 책 읽기의 고수들이다. 책에 관한 온갖 정보와 리뷰를 공유할 수 있는 인터넷 서점에 가면 그런 사람들이 넘쳐난다. 밥벌이로서 직장이 있을 터인데, 많이 읽으면서 깊이까지 있으니 저들이 사람일까 싶을 때가 한두 번이 아니다.

많이 읽으면서 깊이까지 있으면 좋겠지만 그게 안 되는 나 같은 이는 차선책으로 적게 읽어도 제대로 읽어야겠다는 생각을 해본다. 많이 읽으면서 얕게 읽는 것보다는 그게 낫지 않겠나. 고수가 못될 바에야, 한 달에 삼십 권 읽는 것보다 세 권을 제대로 읽는 게 더 나은 독서법일 테니까.

제대로 읽는다는 명분하에 내게 눈도장 찍힌 책들은 대개 지저분해져 있다. 한 문장 한 문장에 매료된 상태에서는 밑줄 긋지 않을 수 없고, 접고 싶은 부분 또한 시시각각 나타나며, 옮겨 적고 싶은 구절엔 별표들이 넘쳐난다. 책이 더러워진 만큼 애정의 강도도 높아진 것이다. 한 번 읽고 책장 안에 모셔진 것보다 느리게 보듬어 닳은 것이 제대로 사랑받은 것들이다.

빨리 읽고 많이 읽는 것은 중요하지 않다. 적게 읽더라도 깊게 다가와 읽는이의 의식을 한 방 때려줄 수 있는 서늘함, 그것이 제대로 된 읽기이다. 카프카가 `변신`에서 이런 말을 하지 않았던가.`책이란 무릇, 우리 안에 있는 꽁꽁 얼어버린 바다를 깨뜨려버리는 도끼가 아니면 안 되는 거야.`

/김살로메(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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