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십 권의 완성된 책을 보자 질려버린 왕은 한 권으로 줄이라고 했다. 그것도 길었다. 단 한 줄로 줄이라고 하자 배고팠던 학자들의 요약문은 `공짜 점심은 없다`라는 것이었다나.
미끼라는 걸 알면서도 거절을 못하거나, 순간의 판단 실수로 공짜에 혹할 때가 있다. 유명 대학 음료 사업부라며 콜 센터 직원이 몇 차례나 전화를 걸어온다. 내가 속한 모임에 판촉 행사 차 직원이 잠깐 들르겠단다. 십여 분 시간만 내주면 되고 부담 느낄 필요가 없는데다 점심 도시락까지 제공하겠다는 것이었다. 공짜가 없다는 걸 알면서도 누이 좋고 매부 좋자는 심정으로 그렇게 하마라고 약속을 해버렸다.
일식 도시락 앞에서 판촉 직원이 멘트를 한다. 그 어떤 강매도 강압도 없었다. 나름 정중했다. 난공불락인 아줌마 고객들을 상대로, 한 가계의 책임자이자 직장인인 그가 최선을 다한다. 맘이 짠하다. 눈치껏 주변을 살피니 다른 사람들 맘도 같아 보였다. 그렇다고 한두 푼 하는 것도 아닌 블루베리 음료를 무턱대고 사겠다고 나설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어릴 적 제 아비를, 지금의 제 남편을 보는 것 같은 가장의 무거운 어깨를 목도한 우리들은 도시락에다 코를 박은 채 별 말이 없다. 이런 먹먹한 분위기였으면 차라리 만날 약속을 하지 않는 게 나을 것이었다. 반도 비우지 못한 각자의 도시락을 밀어낼 때, 단내 나는 판촉남, 아니 한 집안 가장의 말끝이 흐려지고 손끝 또한 떨리는 걸 느낄 수 있었다. 결코 공짜 점심은 없었다. 여태껏 먹은 밥 중 가장 값비싼 것이었다. 세상에 공짜는 없다는 것을 실감나게 해준 한 끼의 점심.
/김살로메(소설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