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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천절

김살로메(소설가)
등록일 2012-10-02 20:03 게재일 2012-10-02 19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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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고 지내는 필리핀 친구가 있다. 귀화한 지 몇 년 되었는데 타국에서 온 사람들 대개가 그렇듯 우리말이 서툴 수밖에 없다. 당연히 우리 역사와 문화에도 낯설다. 그녀가 묻는다. 개천절이 뭐냐고? 모국어를 맘대로 구사하는 사람들끼리도 개천절에 대해서 이야기하자면 난감한데, 이방인 출신이 진지하게 물어오니 당황스럽기만 하다.

단군이 최초로 우리나라를 세우신 것을 기념하는 날이라고 설명을 하는데 뒤통수가 당긴다. 평소 그런 순수한 의미보다는 합법적 공휴일이구나, 하는 실리적인 생각이 먼저 떠오르기 때문이다. 필리핀에도 독립기념일이 있는데 그것과 비슷한 것이냐고 묻는다. 애매모호하기만 한 광복절이란 이름이 그들의 독립기념일과 비슷할지 모르지만, 개천절은 오롯이 제 정체성을 살피는 것과 연관이 깊다고 내가 말한다. 유수한 역사와 전통을 자랑하지 않으면 갖기 힘든 뼈대 있는 기념일. 하지만 그 진중한 의미를 정작 우리는 잊고 산다.

기원전 2333년 단군왕검이 최초의 국가 조선을 건국했음을 기리는 뜻으로 제정한 날이 개천절이다. 하지만 `하늘이 열린다`는 개천의 본뜻은 100여 년 앞선 기원전 2457년 환웅 시대로 소급된다. 환웅이 처음으로 하늘을 열고 백두산 신단수 아래 신시를 열어 홍익인간의 정치를 펼치기 시작한 날이 음력 시월상달 초사흗날이었다. 상달은 으뜸달을 말하는데, 풍요와 수확의 계절인 시월이 상달이 되는 건 당연했다.

개천절은 이처럼 건국 신화의 경축일이자, 민족국가로서의 정체성 확립을 근거하는 자긍의 의미가 담겨 있다. 당시 시월상달은 당연히 음력이었겠지만 그것을 따지는 건 단군 이야기가 신화냐, 역사냐를 따지는 것만큼이나 일반 시민에게는 큰 의미가 없다. 우리가 물이라면 샘이 있을 것이고 우리가 나무라면 뿌리가 있다는 것을 일 년에 한 번쯤 되새겨 보는 날은 필요하다. 그런 자긍의 뿌리가 올해로 4345년째이다.

/김살로메(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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