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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위에 새기는 말(言)

김살로메(소설가)
등록일 2012-09-17 21:12 게재일 2012-09-17 23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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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은 기록의 동물이다. 욕망하고 기원하는 것을 마음에만 새기면 누가 알아 줄 것인가? 맘과 맘으로만 신을 만날 수 있었다면, 인류사를 통틀어 그토록 많은 신을 위한 제단은 필요치 않았을 것이다. 인간은 언제나 간절한 약자로서 신 앞에 드러나기를 바라는 존재였다.

신에게 보낼 그 소망의 말들을 새기는 게 선사시대 사람들의 최대 고충 중 하나였다. 문자가 없던 그 때 취할 수 있는 가장 적극적 흔적 남기기가 바위에 뭔가를 새기거나 그리는 일이었을 것이다. 쉽게 다가오지 않는 것들을 영원에 호소하고 싶었던 그들은 그렇게 암각화를 우리 곁에 남겼다.

볕 좋은 날이었다. 지인들의 안내로 칠포리 곤륜산 기슭 암각화를 보러 갔다. 바위에 새긴 마음의 소리를 대하는 첫 느낌은 `너무 먼 당신`이었다. 울산 반구대 암각화와는 완전히 다른 맛이었다. 고래, 거북, 사람 등 실체가 확실한 그림만 상상하다가 추상적이고 모호하기만 한 그림을 만나는 순간 당황했다. 잠시나마 이 바위그림이 청동기시대 이후 까마득한 시간 여행 중이라는 걸 잊고 있었던 것이다.

멀리서 봤을 땐 의자 같아 보였으나 가까이서 보니 방패나 실패 또는 칼자루 모양 같았다. 무슨 그림인지 전혀 감이 잡히질 않았다. 하기야 조상들이 내던져준 추상의 의미 앞에서 구상적 실체를 의문하는 것 자체가 모순이었다. 그림의 숨은 의미 찾기는 그리 중요한 게 아니었다. 그렇다고 풍요와 다산을 기원하는 지모신일 거라고 해석하는 학자들의 말씀에 무조건 고개를 끄덕이고 싶지도 않았다.

다만 그 옛날부터 사람은 생각하고, 기록하기를 욕망하는 존재였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었다. 물 좋고 산 밝은 그 터전에, 하염없이 소원하고 기원하는 실체적 진실로서 우리 조상이 숨 쉬고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숙연해지는 것이다.

/김살로메(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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