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들 중에는 사기를 치는 등 처음부터 악행을 하고 싶어 하는 사람은 극히 드물다. 대부분은 어떤 일을 추구함에 있어서 좋은 의도로 일을 수행한다. 그러나 보통의 경우에는 의도하는 방향과는 다르게, 의도하지 않던 결과를 아주 많이 경험한다.
문제 아동을 가진 부모가 “내가 훌륭하게 키우려고 노력한 아이인데, 왜 저렇게 잘못된 길로 갈까?”라고 하는 경우가 여기에 속한다. 평판이 좋은 사람이, 주위로부터 외면을 당하기도 한다. 성실하고 부지런한데, 찌든 가난에서 벗어날 수 없는 경우도 있다. 또 직장에서 성실히 일을 했는데도, 정리해고를 당할 수가 있다. 전부가 모순인 것 같다. 그렇다고 우리는 좋은 의도로 추진하는 사람의 선한 마음을, 악하게 바꾸라고 주장하지는 않는다.
세상에는 어둡고도 부정적인 요소가 밝은 것과 혼재되어 있다. 많은 요소들이 꼬리를 물고 나타난다. 이런 뒤섞인 환경에서 한계 능력 속에 있는 우리는 내일을 예측할 수 없다. 그냥그냥 해(害)를 주고받지 않고, 살아가도록 노력을 할 뿐이다.
우리는 어려서부터 `바르게 살아라` `참아야 한다` `화 내지 말라`는 등 여러 가지 타이름을 받으면서 성장해 왔다. 또 그렇게 살려고 노력도 해 왔으나, 우리는 그 결과를 수긍할 수 없는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좋은 의도를 가지고 선하게 살아도, 잘못된 길로 들어갈 수 있다면, 굳이 선한 사람으로 살 필요가 있느냐. 차라리 적당적당히 살아가도 좋지 않겠는가? 우리는 이 문제에 대해서 정답을 모른다. 그러나 인간인 우리는 그 이유를 추측해 볼 수 있다.
지나치게 의롭게 살려고 하다가는 잘못되기 쉽다. 그런 사람들은 실수를 하면 안 되고, 잘못이 있어서도 안 되며, 모든 것이 완벽해야 한단다. 그러나 그건 불가능하다. 실제로 완벽한 사람은 한 사람도 없는데, 완벽해 지려고 노력한다. 완벽은 신(神)만이 가지고 있다. 완벽하게 되면 그는 신이다.
그러나 하나님은 될 수 없기 때문에 완벽하다면 다른 신, 즉 우상이 되어버릴 수가 있다. 우상인 그는 완벽 때문에 비판을 받으면, 견딜 수 없다. 자주 분개하고 원망도 한다. 사람은 완벽이나 의로움을 목표로 살지 않는다. 제일 기본은 사랑과 용서를 가지고 살아가는 것이다. 순진한 사람들은 대부분 좋은 의도를 가지려한다. 자기가 순진함으로 모든 것이 협력적으로 도움을 줄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래서 무리하게 덤비는 형태로 일을 추진한다. 그들은 혼자 세상일을 도맡아 하듯이 열심히 노력한다. 다른 이가 그에게 도움을 요청하면, 이들은 힘이 들고, 시간이 없는데도, 거절을 못한다. no라고 하지 못하여 ko당하는 것이, 바로 이 경우이다. 좋은 의도였지만 결과는 시원치 않은 경우가 되겠다.
좋은 의도를 가진 사람은 주로 선한 사람들이다. 그들은 생활에서 인내심을 가지고 산다. 묵묵히 일하며, 싫어도 싫다는 소리를 하지 않는다. 하고 싶은 말이 있거나, 도움을 요청할 일이 있어도, 그는 자기가 혹시 별나지나 않을까 걱정한다. 그러나 표현하지 않으면 다른 사람이 그의 마음을 알 수 없다. 싫은 일을 싫다고 말하지 않으면, 그는 싫은 일을 자기가 할 수 밖에 없다. 그것은 결국 나쁜 결과를 가져온다. 자기주장을 말해야 한다. 남을 공격하는 것은 나쁘지만, 자기주장은 건강한 자기애(愛)이다.
선한 사람들은 나쁜 결과가 일어나면, 분노를 억누르려 한다. 화내면 성숙하지 못한 사람으로 여긴다. 화는 자주 낼 것이 아니라, 잘~내야 한다. 상대가 충분히 이해하면서도, 나의 하고 싶은 말을 모두 할 수 있어야 한다. 우리는 약점투성이의 인간이기에 실패의 가능성은 부지기수이다. 이해와 사랑으로 최선을 다하고 결과는 하늘에 맡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