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낙들은 똬리에만 의존해 큰 소주병을 머리에 이었다. 제수품이나 생필품이 담긴 보자기를 양손에 들었으므로 남는 손이 없다. 등유가 담긴 그 병은 간들간들 위태롭기만 하다. 하지만 절대로 머리에서 떨어지지 않는다. 묘기를 넘어 신기한 일로 내 기억의 저장고에 남아 있다.
남정네들은 얼큰하게 취했다. 소 판 돈으로 두둑해진 허리춤의 그들 손엔 새끼줄에 엮인 간고등어 한 손이 들려 있었다. 옴팡지게 깊은 내륙에만 살아왔던 사람들은 비린 고기 구경하기가 힘들었다. 냉장 시설이 마땅찮던 그 시절 궁여지책으로 생겨난 것이 간고등어였으리라. 차비와 맞바꾼 비릿한 손끝을 풀어 한 집의 가장은 어린 자식과 늙어가는 노모를 위해 한 끼 밥상을 부풀렸다. 그렇게 간고등어는 어린 시절 최고의 찬이었다.
안동 간고등어 업계가 불황에 허덕이고 있다는 보도가 이어진다. 모두 욕심 때문이다. 덜 노동하고 더 얻고 싶은 욕구는 편법 영업이라는 병폐를 낳았다. 타지역에서 완제품을 들여와 포장만 하거나, 아예 상표를 빌려주고 대여비만 챙기기도 했단다. 이런 과정에서 원산지도 불분명한 저질 수입산이 덤핑 판매되기도 했단다. 무늬만 안동간고등어가 유통된 셈이다.
그때는 안동간고등어라는 이름조차 없었다. 그저 시골 사람들에겐 최고의 찬일 뿐이었다. 한 가계를 책임진, 취한 아비가 오일장에서 돌아온다. 새끼줄에 엮인 한 손의 간고등어를 흔들며 사립문께부터 제 새끼 이름을 부르는 아버지. 그 무구했던 시절로 상혼을 되돌리기를 바라는 건 너무 동화적일까.
/김살로메(소설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