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예계 잘 나가는 걸 그룹 한 팀이 왕따 사건에 휘말렸다. 당사자들 간의 불만이 SNS를 통해 흘러나오는가 싶더니 급기야 기획사 측에서는 왕따 대상이 된 한 명을 방출하기에 이르렀다. 휴머니즘적 접근보다 경제 논리에 민감할 수밖에 없는 기획사로서는 당연한 선택이라고 변명할 것이다. 하지만 미디어가 제공해주는 여러 사실을 진실로 캐는 데 일가견이 있는 네티즌들이 두고 볼 리 없다. 기존 멤버들의 안티 카페를 개설해 왕따 당한 당사자 구명 운동에 나섰다. 며칠 만에 몇 십만 회원이 모였다니 유래 없는 일이다.
세상은 다변화되고 빨라졌다. 이제 우정마저 그 도도한 물결에 휩싸여 허울로만 남는 지경이 되었다. 오직 앞서야 한다는 강박으로 우정도 친구도 뒷전인 채 물질의 노예가 되기를 부추김 당한다. 더 나은 미래, 더 좋은 생활이라는 미명하에 기계적이고 형식적인 관계를 세상은 요구한다. 그 심한 예가 연예계라 할 수 있는데 어린 연예인들을 돈벌이 수단으로만 생각해온 기획자들은 인성이나 가치관 등 사회생활에 필요한 최소한의 덕목은 안중에도 없어 뵌다.
왕따 사건이 있을 때마다 느끼는 건 가해자는 없고 피해자만 있다는 것이다. 가해자 역시 또 다른 피해자가 되어 고통의 나날을 보내야 한다. 왕따는 개인의 문제라기보다 언제나 상황의 논리와 관련이 있다. 왕따의 배경이 되는 구조적인 문제부터 생각해볼 문제이다. 길지 않은 인생, 내 슬픔을 등에 지고 가는 자를 한 명이라도 더 만날 수 있도록 해야 하지 않겠는가.
/김살로메(소설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