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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향한 주사파 인사들의 전향 이유를 보면서

등록일 2012-08-02 20:39 게재일 2012-08-02 18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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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영문 한동대 국제경영대학원 교수

“참혹한 북한의 인권실상과 잔혹한 독재에 시달리는 북한의 인권과 민주화를 위해 계속 노력하겠다”

김영환씨가 중국에서 풀려난 후 가진 귀국 인터뷰에서 밝힌 다짐이다. 그는 지난 3월부터 국가안전위해죄 위반혐의로 중국 국가안전청에 114일간이나 구금되어 있던 북한 인권운동가이다. 김영환씨가 북한의 민주화 인권운동을 위해 활동하기 전에는 원래 어떤 사람이었던가? 80년대 민주화 학생운동의 선봉에서 주사파 3대 조직 중 하나인 구학련(구국학생연맹)을 이끌던 주사파 제1의 이론가가 아니었던가.

그는 80년대 당시 대학가 운동권 학생들과 젊은이들의 정신적 대부로 1986년에는 주체사상 학습서인 `강철서신`을 집필하기도 했다. 그 후 1991년에는 북한으로 밀입북하여 김일성을 만나기도 했으며 그 이듬해 지하조직인 민혁당을 창당하기도 했다. 그는 북한의 주체사상을 신봉하며 북한 체제와 김일성 일인독재를 위해 최일선에서 활동하던 북한 공작원이었다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그랬던 그가 지금은 왜 북한에 등을 돌렸을까. 김영환씨는 잘못된 북한체제와 자신이 동경하고 받들었던 주체사상이 김일성 수령의 체제유지만을 위한 허구와 거짓임에 회의를 느껴 심경에 변화를 가져왔다고 한다. 그 후 그는 1997년 민혁당을 해체한 후 전향했으며 지금은 위험을 감수하며 오히려 북한에 강력히 맞서는 활동을 하고 있다.

전향한 사람이 구학련의 김영환씨 뿐일까. 80년대 학생운동의 주사파 3대 조직인 구학련 외 자민통과 반미청년회의 지도부 및 핵심 간부들도 전향했다. 현재 북한 선진화운동을 벌리고 있는 구해우씨는 당시 자민통을 이끌던 사람이다. 2001년 6월 평양방문 후 사회주의의 모순을 확인한 후에 사회주의와 결별했다고 한다. 그 뿐만 아니라 당시 반미청년회 핵심 간부였던 강길모씨 역시 전향한 사람이다. 그는 전향 이유를 “대한민국이 세계사에 유례없는 `성공의 역사`라는 사실을 인식하고서 어떻게 전향을 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라고 되묻고 있다.

리드 급 정통 주사파는 아니더라도 주체사상에 대한 교육은 받았지만 아직껏 운동가로 활동하지 못했음을 빚으로 생각하는 이들이 있다면 이제는 정신을 차려야 할 것이다. 그들이 경전으로 여기던 주체사상은 김일성일가의 대를 이은 개인숭배를 합리화하는 권력의 수단일 뿐임을 알아야 한다. 이는 지난 4월 헌법보다 상위규범인 조선노동당 규약 서문에서 온 사회를 주체사상화 한다는 조문을 김일성-김정일 주의화 한다는 것으로 바꾼 것만 보더라도 알 수 있을 것이다. 아직도 감상적 민족주의와 대북화해주의 및 반미감정에 빠져 각종 사회적인 문제에만 노출되면 열성적인 행동파가 되는 비정통 주사파가 있다면, 자신들의 행동이 정부타도를 위해 내부분열을 일으키는 북한의 대남 전략을 도와주기만 할 것이라는 사실을 명심하여 이제는 하루빨리 미몽에서 깨어나야 할 것이다.

과거 학생운동의 주사파 핵심지도급 인사들이 북한의 주체사상에 회의와 배신감을 느끼며 전향하는 것을 보면서도 아직도 대한민국의 국가정통성을 부정하며 북한을 정신적인 `조국`으로 생각하는 세력이 있다면 우리 국민 모두는 인식을 달리해야 할 것이다. 이들은 북한의 대남 적화통일전선전술에 따른 노선을 그대로 신봉ㆍ추종하는 세력으로 대한민국 정부를 붕괴시킨 후 남한 내 사회주의 권력수립을 꿈꾸는 우리의 안보를 붕괴시키는 분명한 내부의 적이기 때문이다. 정부는 이들의 위법행위에 대해 엄밀히 조사한 후 엄중 처벌하므로 이 땅에 발을 붙이지 못하게 해야 할 것이다. 그리고 국가안보관련 각종 단체에서는 종북 좌파세력들이 주장하는 선전선동공세의 부당성과 허구성을 낱낱이 밝혀내어 선량한 국민들이 더 이상 말려들지 않고 정신적으로 철저히 무장할 수 있도록 적극 지원하여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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