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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탈북자`는 없고 `공화국 배신자`만 있다?

등록일 2012-07-09 21:30 게재일 2012-07-09 22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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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배한동 경북대 명예교수·정치학

2년 전 7월 나는 독일의 프랑크푸르트와 베를린 등지의 재외 동포 대상 남북 합동 강연회에 다녀온 적이 있다.

그 자리에는 재독 동포 200여명과 소수의 독일인, 강연에 초청된 남북의 학자들이 참석했다. 나는 순서에 따라 `통일을 위한 재외 동포들의 역할`에 관한 연설을 했고, 특히 재외 동포들이 남북 화해의 중개자 역할도 해야 한다고 역설했다. 북에서 온 정모 교수는 예상한대로 북한 체제 선전에 열을 올리고, 그들이 떠받드는 `우리 끼리` 정신으로 통일 과업을 앞당기자고 열변을 토했다.

그 강연이 끝난 후 참석자들의 질문시간이 이어졌다. 대부분의 청중들은 독일까지 찾아온 고국의 남북 학자들을 환영한다는 말과 함께 남북의 통일을 제시하기도 했다. 그런데 갑자기 어느 독일인 학생이 북한 학자들에게 `탈북자 문제를 어떻게 생각하느냐`고 심각하게 질문했다. 북한 학자가 통역을 통한 질문 요지를 듣고, 당황하던 모습이 지금도 뇌리에서 떠나지 않는다. 그들은 `탈북자는 없고 공화국을 배신한 자는 소수 있다`는 궁색한 답변만 했다.

몇 해 전 중국 연변 대학에서는 남북학자들의 학술 대회가 있었다. 나는 한민족(조선)의 전통과 언어 역사 등에 관한 학술 토론회에 초청됐다. 남북 학자 30여명과 조선족 학자가 참석한 학술대회는 별다른 충돌 없이 마무리되고, 저녁에는 참석자를 위한 만찬이 열렸다. 나는 옆자리에 앉은 북한의 저명한(?) 주체 철학 연구 소장이라는 교수에게 탈북한 황장엽 선생을 잘 아시는지 물어봤다. 그는 순간적으로 안색이 변하더니 `그 간나 새끼는 묻지도 말아요` `조국을 배반한 그놈은 천추에…`하면서 지면에 소개하기 힘든 욕설을 했다. 나는 당황하지 않을 수 없어 대화를 부드러운 쪽으로 돌려 썰렁한 분위기를 수습하려고 노력해야 했다.

이처럼 북한 당국이나 북한 측 인사 들은 탈북자 문제에 대해서는 민감하게 신경질적인 반응을 보인다. 북한은 공식적으로 `탈북자는 없고 조국의 배반자`만 있는 나라이기 때문이다. 사실 우리 남한에는 북한에서 탈출해 입국한 탈북자가 현재 2만4천명을 넘어서고 있다. 그것도 중국이나 몽골 등 제 3국에 떠도는 탈북자 수만 명을 제외한 숫자다. 북한은 탈북자 정보를 주민들에게는 비밀에 붙이게 하고, 그들에 대한 감시 통제 정책을 더욱 강화하고 있다. 탈북자들은 북한의 지방 공안이나 행정책임자들에게는 문책이 따르기 때문 중앙에 정확히 보고되지 않고 있다. 내가 아는 어느 탈북자도 자신이 `중국의 친척집을 방문중`이라고 보고돼 있다고 했다. 특히 1990년 중반 이후 식량 사정이 극도로 악화된 상황에서 엄격한 주민 통제가 사실상 불가능하고 마비된 상태이기 때문 더욱 그러하다.

탈북자 증가는 이미 세계적인 뉴스가 됐다. 북한 당국만 이 사실을 부인하고, 통제된 북한의 주민들만 이를 모를 뿐이다. 세상에는 비밀이 오래갈 수 없고, 더욱 생존을 위해 계속되는 탈북자 문제를 북한이 언제까지고 숨길 수는 없다. 역설적으로 이번 박인숙씨의 기자 회견은 탈북자의 존재를 북한이 중앙 방송을 통해 공식적으로 인정한 셈이다. 남쪽의 탈북자가 고생하여 번 돈을 북의 가족을 위해 송금하는 일은 이제 공공연한 비밀이 됐다. 이 같은 사실이 북의 주민들 사이에도 암암리 퍼져간다는 탈북자 증언까지 있다. 미국에서 통과된 `북한 인권 법` 덕분에 이미 탈북자 135명이 미국에 안착했다는 소식까지 들리니 이 소식은 더욱 퍼질 수밖에 없다.

우리는 생존을 위해 우리의 이웃이 된 탈북자의 순조로운 정착을 정성껏 도와야 한다. 우리 사회 일부 극단적 좌우익의 그들에 대한 편견과 오해는 하루 빨리 불식해야 한다. 이들의 평화로운 정착은 민족 통일의 앞날을 가늠해 볼 수 있는 잣대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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