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在) 프랑스 여성 서지(書誌)학자 박병선 박사가 프랑스 파리에서 향년 88세로 타계했다. 1955년 프랑스로 유학을 떠난 그는 2009년 암 치료를 위해 10개월 동안 귀국했던 것을 제외하고는 줄곧 프랑스에 거주하면서 한국 문화를 위해 헌신했다. 그곳 국립도서관에서 사서로 근무했던 그는 1972년 이 도서관이 소장한 한국 고서 `직지심체요절`은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금속활자본이란 사실을 학술적으로 입증한 분이다. `직지심체요절`은 독일의 구텐베르크의 `42행 성서`보다 무려 78년 앞선 것으로 증명돼 우리 인쇄의 우수성을 세계에 널리 알렸다. 그에게는 `직지 대모(代母)`라는 별칭이 생겼다. 그분은 정말 조국을 사랑했고 한국문화를 사랑했으며 일평생 미혼으로 살면서 오로지 우리의 것을 정말 소중하게 여기셨던 학자다. 프랑스 국적인 그는 외규장각 도서의 존재를 한국에 알렸다는 이유로 프랑스에서 `반역자`라는 손가락질을 받고 국립도서관을 그만둬야 했다. 연구자로서 초창기에는 국내 학계로부터도 곱지 않은 시선을 받았다고 한다. 그는 말년에 한국으로부터 별다른 도움 없이 프랑스 정부의 연금으로 어렵게 생활했다고 한다. 병원 치료비가 모자라 고통을 겪었다. 그럼에도 그는 `연구자로서 할 일을 한 것 뿐`이라며 한국인임을 자랑스럽게 여겼다. 정부는 그의 공적을 치하해 국립묘지에 안장키로 했다는 것이다. 천 만리 이국땅에서도 조국을 잊지 않고 언젠가는 조국으로 돌아 가리라는 일념으로 각별히 애정을 쏟은 그의 정신적 유산을 계승해야 한다. 규장각 도서들은 프랑스와 오랜 줄다리기 협상 끝에 반환이 완료됐지만 영구적인 것은 아니었다. 19세기 후반 국력이 쇠약했을 때 유린당했던 우리의 문화적 자존심은 어느 정도 위안을 받았다고 한다. 그는 프랑스 외교부에서 한국 독립운동 관련 기사를 스크랩 하기도 했으며 우리 문화의 유산적 가치를 세계인에게 널리 알리는 업적에 지대한 공(功)이 많은 진정한 애국자의 한 사람이다.
/손경호(수필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