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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본주의의 미래

등록일 2012-05-10 21:31 게재일 2012-05-10 18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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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최충규포스코경영연구소 연구조정위원
세계경제가 미국의 금융위기로 침체의 나락으로 빠져들었을 때 영국의 경제 일간지 파이낸셜타임즈는 “신자본주의의 실험은 실패했다”고 선언했다. 또한 이 신문의 컬럼니스트인 마틴 울프는 `오즈의 마법사`에 나오는 도로시가 회오리바람에 휩쓸려 오즈 땅에 떨어졌을 때 “더 이상 캔사스에 있는 것 같지 않아”라고 말했던 것에 비유하며 “앞으로는 과거 30년과는 전혀 다른 상황이 전개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그렇다면 자본주의는 앞으로 어떻게 변할까? 체제 변화에 관심 있는 학자들이 앞 다투어 이에 대한 답을 내놓고 있다. 인간의 얼굴을 한 자본주의, 따뜻한 시장경제, 깨어있는 자본주의, 공동체 자본주의, 자본주의 4.0 등등. 다시 말해서, 앞으로 전개될 자본주의는 인간미 넘치고, 훈훈하며, 의식 있고, 유대감을 중시하는, 그래서 지금까지의 신자유주의와는 다른 새로운 자본주의가 될 것이라는 얘기다.

런던 하이게이트 공동묘지에 묻혀있는 칼 마르크스가 이런 얘기를 듣고 있다면 꽤나 답답해 할 것이다. 자신의 역작, <자본론>을 통해 자본가들이 부를 축적하는 동안 노동자들은 계속 빈곤해지고, 소비능력을 상실한 대중은 상품 대가를 지불하지 못해 신용위기와 생산위기가 초래됨으로써 결국 자본주의 체제는 붕괴된다고 역설했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많은 학자들이 아직도 자본주의의 본질을 이해하지 못하고 딴 소리를 하고 있으니 그로서는 안타깝기 짝이 없을 것이다.

답답해 할 사람은 마르크스뿐이 아니다. 마르크스가 죽은 해에 케인즈와 함께 태어난 슘페터도 생전에 자본주의 붕괴론을 주장하였다. 마르크스가 내적 모순에 의한 체제 붕괴론을 주장했다면, 슘페터는 이와는 반대로 자본주의가 스스로 성공하기 때문에 망할 것이라는 역설을 펼쳤다. 자본주의는 혁신을 통해 성공하지만, 결국에는 이 혁신이 제도화되고 일상화되어 스스로 무너진다는 것이다. 슘페터의 입장에서 보면, 따뜻한 자본주의는 혁신을 제도화하기보다는 질식시킬 것이기 때문에 올바른 진행방향이 아니라고 손사래를 칠 것이다.

칼 폴라니도 가만히 있지는 않을 것이다. 그는 자신의 대표작, `대전환`에서 시장과 정부, 경제와 사회 간의 갈등관계에 주목하여 자본주의 시장경제의 종말을 예고하였다. 그에 따르면, 산업혁명 이전에는 시장과 경제가 관습이나 신분제도에 의해 통제를 받았으나, 19세기에 들어 시장이 사회로부터 분리되어 독자적으로 움직였으며, 오히려 사회를 통제하고, 나아가 “악마의 맷돌”처럼 사회를 분쇄하기에 이르렀다고 한다. 그런데 이러한 시장의 독주는 사회 각 분야의 자생적인 저항을 불러 일으켜 결국 파국을 맞게 된다고 주장하였다. 다시 말해서 자본주의 시장경제는 결코 따뜻해질 수 없으며, 사회의 자기방어적 역습에 의해 붕괴될 뿐이라는 것이다.

마르크스, 슘페터, 폴라니 등의 주장은 그동안 많은 사람들로부터 공감과 칭송을 받아왔으며, 심지어는 숭배의 대상이 되기도 하였다. 궁극적으로 그들의 예언은 실현될 것이다. 만물이 그러하듯 자본주의도 언젠가는 사라지고 그 자리에 다른 체제가 들어설 것이라고 보아야 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것이 어떤 체제인지는 누구도 예단할 수 없다. 마르크스가 말한 무계급 공산주의 사회가 도래하리라는 보장도 없고, 슘페터나 폴라니가 말한 사회주의는 가능할 수는 있어도 필연적이지는 않다.

엉뚱한 생각일지도 모르지만, 만일 진화론을 정립한 찰스 다윈에게 자본주의의 미래에 관해 물어본다면 그는 아마도 이렇게 대답할 것이다. “자본주의 체제에서의 혁신은 생물계의 변이와 같고, 시장의 선택은 자연계의 선별과 같다. 자본주의 체제에서 잘 생성되는 혁신이라는 이름의 변이는 끊임없이 새로운 것을 만들어 내고, 이것이 시장선택을 통해 누적적으로 증폭되는 과정을 거쳐 자본주의는 계속 진화할 것이다. 그러나 그 끝은 아무도 알 수 없다. 진화하는 자본주의 그 자체가 답을 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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