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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 이스탄불 탁심 광장(Taksim Square)과 이스티크랄 거리에서의 맛기행

등록일 2012-04-20 21:35 게재일 2012-04-20 12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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케밥이 준 `입안의 사치` 터키의 마지막 선물이었다
▲ 커스터드 크림 위에 슈크림을 보이지 않을 정도로 잔뜩 뿌려주는 프로피테롤.

우스크다라 구역에서 돌무쇠(대중교통 배)를 탄 우리들은 보스포루스 해협을 건너 돌마바흐체 부근 데식타스(Desiktas) 선착장에 내렸다. 그곳에서 택시로 `제1보스포루스 대교`를 건너 아시아 지역까지 갔다. 다리 건너에 베알레르베이 궁전이 있기 때문에 그곳을 구경하기 위해서다. 하지만 베알에르베이 궁전은 문을 열지 않았다. 주차장에 잠시 내렸다가 다시 신시가지의 기준점이라 할 탁심 광장으로 향했다.

탁심은 아랍어로 분배를 의미한다. 15세기 이후 이스탄불 북쪽에서 끌어온 물을 도시 곳곳으로 분산했는데 그 중심이 이 곳이기 때문에 탁심이란 이름을 붙이게 되었다.

우리 일행은 광장 중앙에 설치한 독립기념비 앞에 서성였다. 그 곳에는 1928년 건립된 터키공화국의 상징 조형물이 있다. 이탈리아 건축가가 설계했다는 이 비는 터키의 근대화와 밀접한 관련을 맺고 있다. 오스만 투르크의 오백년 역사를 접고 새로운 시대를 연 아타튀르크가 이 비의 주인공이다.

아타튀르크는 우리에게 무스타파 카멜(Mustafa Kemal Ataturk)로 널리 알려진 이름이다.

오스만 투르크 오백년 역사를 접고 개혁의 물꼬 튼 주인공

곳곳서 만나는 `터키 건국의 아버지` 아타튀르크의 존재감

▲ 이스티크랄 거리 야경

유럽과 아프리카까지 영토를 넓혔던 오스만 제국은 1914년 1차 세계대전 전후 아랍 지역을 잃게 되고 민족주의 운동으로 분열과 혼란의 시대를 맞는다. 이 때 등장한 인물이 무스타파 카멜이다. 무스타파 카멜은 1923년 로잔느 조약을 맺으며 지금의 터키 공화국이 출범할 수 있도록 리더십을 발휘한다. 새로운 시대에 걸맞은 개혁으로 분열된 나라를 하나의 국가로 이끌 뿐만 아니라 민주주의에 바탕을 둔 대의정치를 하게 된다. 과거와 단절하면서, 현대화를 추진한다.

아타튀르크는 글자 그대로 `터키 건국의 아버지`란 뜻이다. 이슬람 국가인 터키는 그가 죽은 후 1952년 NATO회원국이 되고 1963년에는 유럽공동 시장의 준회원국이 되는데 그의 정치철학이 큰 영향을 주었다. 지금도 터키는 유럽연합에 가입하기 위해 무단히 노력하고 있다.

터키를 여행하다보면 곳곳에서 아타튀르크란 글자를 만나게 된다. 길과 다리에도 아타튀르크란 이름을 붙여 그를 기린다. 이스탄불에 있는 국제공항 이름도 아타튀르크 공항이다.

광장에서 서성이던 우린 이스티크랄 거리로 향했다. 탁심 광장에서 보스포루스 해협 방향으로 뚫린 길이다. 우리나라 서울의 명동처럼, 이스탄불에서 가장 붐비는 곳이 이스티크랄 거리다. 오후 햇살 아래 협곡의 강물이 거세게 출렁이듯 사람 물결이 거리를 꽉 채운다. 혼자 걷는 사람, 친구들과 또는 가족들과 걷는 사람, 사람들의 흐름이 가지각색이다. 이스탄불에서 유동인구가 가장 많은 지역임을 몸으로 느낄 수 있는 거리다.

길 가운데로 평행의 철로가 놓여 있다. 트램(지상철)이 다니는 길이다. 많은 사람이 다녀도 관광용 트램은 종종 철길을 다닌다.

▲ 갈라타 타워 야경

우린 터키의 독특한 맛을 찾아 두리번거리며 간판을 기웃거렸다. 여행이란 것이 으레 무엇인가를 찾기 위해서는 다리품을 팔아야 한다. 그렇기에 힘든 것을 감수해야 한다. 얼마쯤 걸었을 때 한 젊은이가 쫓아온다. 손에는 한국어로 쓰인 `이스탄불`이란 화보집이 있다. 가게에서 한국어로 쓰인 화보 책자가 있어 가격을 물었던 책이다. 젊은 상인은 가게보다 싸게 주겠단다. 한 권 샀다. 그런데 그 책을 넘겨보며 나와 우리 일행은 웃음을 터뜨렸다. 책 제목 `이스탄불`이란 글자가 거꾸로 씌어 있는 것이다. 내가 아랍어를 도통 감 잡을 수 없었던 것처럼, 그들에게 우리 한글은 어려운 글자임에 틀림없었을 것이다. 인쇄를 이스탄불에서 했기 때문일 것이다.

여행 중 어떤 장면을 보았을 때, 그것을 사고, 맛보고 싶은 욕구가 심장을 두근거리게 할 때가 있다. 주머니 사정이 허락된다면 사야할 때 사야하고, 먹어야 할 때 먹어야 한다. 그것이 사치일 수 있지만 여행은 어떤 면에서 조금의 사치를 필요로 한다. 눈과 입과 귀가 즐거울 때 여행은 더욱 풍성하고 아름답다. 때를 놓치면 후회하게 되기 때문이다.

단맛의 결정체 프로피테롤 케이크·양고기를 품은 도네르 케밥…

분위기가 맛의 농도를 달리함을 온 몸으로 깨달으며 아쉬운 작별

▲ 탁심광장 주변의 식당(케밥집)

■ 프로피테롤(Profiterol)

프로피테롤은 이스티크랄 거리에서 우연히 맛보게 된 케이크다. 많은 사람들이 들락거리는 가게를 찾다가 한 가게를 보고, 그 가게에 들어가게 된 것이 프로피테롤 맛을 보게 된 것이다. 터키인들이 얼마나 단 음식을 좋아하는지 이 음식을 통해 알 수 있었다. 커스터드 크림 위에 슈크림을 보이지 않을 정도로 잔뜩 뿌려준다. 손바닥만한 작은 접시에 팔기도 하고, 생일 케이크처럼 큰 것도 있다. 호기심을 갖고 둘레를 훑어보자 가게 주인이 벽면의 액자를 보라고 한다.

주방장 사진이 신문에 실려 있다.

이 집 주방장은 스타란다. 먼 곳에서도 이집 프로피테롤을 사간다고 한다. 내 입맛과는 많이 다른 케이크 맛을 보며 국물 한 숟가락도 떠 마시고 싶다. 하지만 이곳은 내가 살고 있는 땅이 아니다.

오스만 투르크, 즉 오스만 제국의 영광이 있었던 땅이다.

나흘 일정으로 이스탄불을 밤낮으로 쏘다니다 보니 특별히 찾을 곳이 없다. 그랜드 바자르만 네 번을 찾을 정도였으니 말이다. 번화가를 걷다가 다시 들른 곳이 커피숍이다. 탁심 광장 이스티크랄 거리 곳곳에는 이국인의 눈을 끌어당기는 가게들이 많다.

레스토랑, 카페, 쇼핑 센타, 환전소, 보석가게….

커피숍에 앉아 터키식 커피를 주문했다. 터키식 커피는 끓는 커피에 설탕을 넣은 것으로 그 맛 자체가 달콤해 커피의 진한 맛을 잊게 한다.

우리 옆 테이블에 7명의 대학생이 앉아 이야기꽃을 피운다. 진지하다. 어떤 주제를 갖고 토론하는 것 같다. 그들의 토론 내용은 모르지만 현대적 의상에 테이블 위에는 두꺼운 책이 놓여 있다. 어제 보았던 이스탄불 대학교가 떠오른다. 남자가 4명, 여자가 3명이다. 남자든 여자든 입에 담배를 물고 있다. 터키인들은 담배를 자유롭게 피운다. 길거리에서 만나는 대부분 사람들의 입에는 담배가 물려 있다.

우리 넷도 커피를 마시며 자신들의 삶을 되돌아본다.

한국에서의 생활. 다들 살아온 시간을 기억하며 앞으로 하루하루의 시간을 소중하게 맞이하겠다고 말한다. 무엇을 할 것인가? 세 젊은이들은 먼 나라에서 자신의 앞날을 새롭게 설계한다. 아직 학생으로 자기 전공을 어떻게 살릴 것인가를 이 여행을 통해 재발견한단다.

커피숍에서 밖으로 나오니 저녁나절이다.

우리가 가게에 앉아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눌 때 시간은 거짓말처럼 저 만큼 흘렀다. 길을 따라 걸었다. 갈라타 타워가 보였다. 탁심 광장에서 3km 거리쯤 있는 건물이다. 갈라타 타워는 5세기께 지어진 것으로 1338년 다시 세운 것이 지금까지 그 자리를 지키고 있다. 높이 67m로 최고층은 레스토랑이다. 레스토랑 메뉴판을 보니 값이 엄청나다. 식사를 하면서 밸리 댄스를 볼 수 있는 곳으로 우리 일행이 저녁을 먹기에는 너무 비싸다.

■ 케밥

▲ 도네르 케밥

결국 우린 걸었던 길을 다시 밟았다. 그리스 정교회에도, 서점도 기웃거리며 탁심 광장과 붙어 있는 케밥집까지 걸었다. 탁심 광장 근처엔 케밥집이 수두룩했다. 밖에서 안을 훤히 볼 수 있도록 꾸며진 식당들이다. 한 식당에 들어가 도네르 케밥을 시켰다. 도네르 케밥은 빵 안에 양고기와 채소를 넣은 것으로 그 나름대로 독특한 맛을 갖고 있다. 고기를 굽는 모습은 어느 식당이든 같다. 양고기, 닭고기를 많이 쓰는데 회전하는 쇳대에 고기를 차곡차곡 재워 그것을 낮은 온도의 가스 불에 익힌다. 겉부분부터 칼로 잘라낸 것을 빵 가운데 넣어준다. 때론 그 고기를 접시에 담아 그냥 주기도 한다.

터키산 맥주도 한 캔 시킨다.

구운 밀가루 맛과 채소 맛, 그리고 양고기의 독특한 맛이 혀 끝에 닿는다. 하지만 맛의 질감은 혀에서만 느낄 수 있는 것은 아니다. 분위기가 맛의 농도를 달리함을 내 몸은 너무 많이 익혔다.

아! 이스탄불의 사람, 문화, 해협이여. 그리고 아름다움이여!

낮에 걸었던 곳곳의 길목과 아름다운 유적지가 내 의식의 뒤쪽으로 별똥별처럼 꼬리를 남긴다. 유럽과 아시아를 잇는 이스탄불은 동서양의 다양한 삶의 방식들을 수용하면서 문명의 충돌을 완화시켰을 것이다.

지도를 펼치고 갔던 곳을 손가락으로 짚어본다.

보스포루스 해협, 술래이마니예 모스크, 이곳은 토프카프 궁전, 저건 불루 모스크, 저건 아야 소피아. 지하궁전, 그랜드 바자르, 이집트 바자르. 그리곤 해협 건너 우스크다라….

내일 아침 일찍 아타튀르크 공항으로 움직여야 한다. 아쉽다. 떠난다는 것은 사람을 늘 아쉽게 한다. 여행은 남의 삶을 엿보면서 내 자신의 미래를 새롭게 계획하는 과정이다. 그 자체가 힘들지만 결국 행복의 주춧돌을 놓은 시간이기 때문에 새로운 힘을 충전하는 시간이기도 하다.

▲ 이스티크랄 거리에 있는 서점

이스탄불이여 굿바이!

터키여 안녕!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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