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10년 12월24일, 안동에는 무슨 일이 있었을까. 자료·연구 등을 종합하면 당시 임하면 천전리 `내앞마을`의 선비 김대락이라는 분이 의성 김씨 일가를 이끌고 만주로 망명 길에 오른다. 한일 강제병합으로 나라가 망한 지 넉 달만에 그의 나이 65세 되던 해다. 일제에 빼앗긴 나라를 되찾고, 독립투쟁 기지를 건설하기 위해 압록강 건너 서간도까지 가는 넉달 간의 험한 여정을 시작한 것이다. 당시 국내 문중 단위로는 첫 집단 망명이었다.
만주에서 백하는 매부인 이상룡(임시정부 초대 국무령) 선생 등과 함께 한인 자치조직 경학사를 만들었고, 전재산을 털어 신흥무관학교의 전신인 신흥강습소를 세워 독립운동 기지 건설에 매진하다가 1914년 중국 삼원포(三源浦)에서 일흔의 일기로 세상을 떠났다.
백하의 일기는 1911년 1월6일 서울을 떠나면서부터 1913년 12월31일까지 만 3년의 세월을 날짜별로 세세하게 기록됐다. 일기의 표지에 서정록(1911), 임자록(1912), 계축록(1913)이라는 표제를 각각 붙였다고해 학계에서는 이를 통틀어 `백하일기`라고 불렀다.
백하일기는 만주 한인 생활사와 독립운동사에서 있어서 만주망명 한인들의 정착과정을 보여주는 귀중한 자료로서 지금까지 알려진 망명 초기의 생활사와 활동을 당일에 기록한 것으로는 유일하다.
일기에는 만주로 망명한 독립운동가와 가족들이 겪은 의식주의 생활사가 고스란히 담겨 있으며, 독립운동가들의 동선을 비롯해 그들이 독립운동 기지를 만들기 위해 겪는 중국인과의 타협 내용도 들어 있다. 또 낯선 기후와 토질, 굶주림으로 겪은 고된 생활고의 실상도 들어있는데다 날씨와 제사, 꿈, 음식, 물가, 가족의 안녕과 약 처방 등 세세한 부분까지 기록돼 있다.
이 부분에 대해 전문 학자들은 이주 한인들의 생활상을 파악할 수 있는 중요한 자료이면서도, 서간도 지역 최초의 한인 자치단체 경학사와 교육기관인 신흥학교와 관련된 기록이 있어 망명 초기 독립운동사를 확인할 수 있는 의미있는 자료라고 평가했다. 그러나 순한문으로 기록된 백하일기는 그동안 일반인과 초학자들의 접근이 어려웠다. 지난해 초부터 안동독립운동기념관은 일반인에게 공개하고, 학문 연구에 도움을 주고자 이번 발간을 위해 국역 작업을 진행해 왔다.
안동독립운동기념관 김희곤 관장(안동대 교수)은 “백하일기를 쓴 김대락 선생은 자신을 찾아온 사람과 자신이 직접 방문한 사람들을 일일이 기록했을 정도로 모든 기록들이 회고록이 아닌 당일 기록이라는 점과 이동상황 등 초기 망명 과정의 역사를 보여주는 일기라는 점에서 사료적 가치가 매우 크다”고 말했다.
/권광순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