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6.25참전 국군의 사망보상금을 1인당 400만원 정도로 올린다고 한다. 또 직계 존·비속이 아닌 형제나 자매도 보상금을 받게 된다고 한다. 국가권익위 결정으로 여론의 호된 비판을 받은 `5천원 유족보상금`을 바로잡는다며 내놓은 방안들이다. 400만원이란 금액은 수십년 전 폐기된 군인사망보상금 규정의 `5만환`을 금값 인상률과 법정이자를 고려해 환산한 것이라고 한다. 액수만 보면 보상금이 800배가 됐다. 하지만 국군 전사자 `예우`는 고사하고 `현실화`란 평가도 받기 어려울 것 같다. 국가를 위해 목숨 바친 고귀한 희생을 돈으로 다 보상할 수는 없다. 더욱이 정부의 이번 대책에서는 고심의 흔적도 별로 눈에 띄지 않는다. `한강의 기적`을 이뤄낸 60년의 간극이 단순한 돈가치 계산으로 메워질지도 의문이다. 더 큰 문제는 제자리를 맴돌고 있는 듯한 정부의 인식이다. 전사자 예우에 대한 기본적 생각이 바뀌지 않는 한 `5천원 보상금`의 상처는 언제라도 다시 도질 수 있다. 정부의 이번 대책이 `발등의 불`을 끄고 보자는 식의 일회적 호들갑에 그치는 것 아닌지 걱정이 앞선다.
한 전사자 유족의 끈질긴 문제제기로 불거진 `5천원 보상금` 문제는 정말 입에 담기도 부끄러울 만큼 참담한 일이다. 무사안일과 행정편의주의로 뼛속까지 병든 공무원들이 힘없는 국민을 얼마나 괴롭힐 수 있는지 여실히 드러났기 때문이다. 특히 주무 관청인 국가보훈처의 무책임한 `복지부동` 행태는 눈과 귀를 의심할 정도다. 6.25전쟁 첫해인 1950년 11월 육군 일병으로 전사한 김모(당시 18세)씨의 유해가 국립묘지에 안장돼 있다는 사실을 뒤늦게 알게 된 여동생이 보훈처에 유족보상금을 청구한 것은 2008년 12월이었다. 하지만 보훈처는 `전사 후 5년 이내`로 정해진 청구시한을 넘겼다는 이유로 지급을 거부했다고 한다. 전후의 극심한 혼란상을 생각하면 이 `청구시한`이란 것 자체가 비현실적인 행정편의적 발상이라고 봐야 한다. 그런 의미에서 여동생 김씨가 제기한 소송에서 법원이 `청구시한`의 무효를 인정한 것은 당연했다. 그런데 보훈처는 법원 판결로 `청구시한`이란 방패를 잃게 된 이후에도 정신을 차리지 못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