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제 시대에도 가르침의 끈 놓지 않아
국민학교 명칭 1996년 초등교로 바꿔
우선 대한제국이 패망하던 1910년 이전에 설립된 학교가 17개다. 올해를 기준으로 보자면 역사가 이미 100년을 넘은 학교들이다.
이들 학교는 1883년 이후 세워지기 시작했다. 그 어지럽던 변화의 시기에 민족지사들은 종전 방식의 교육으로는 나라에 필요한 인재를 키워내기 힘들다는 각성에 이르렀다. 국가가 부강해지려면 교육의 혁신이 절대적이라는 판단도 함께 했다. 그래서 지사들은 근대교육을 위한 학교를 전국 각지에 설립하기 시작했다. 외국 선교사들도 이 흐름에 큰 몫을 했다.
이 시기 경북에 설립된 학교는 현재의 안동초교, 고령초교, 포항연일초교, 청도초교 등이었다. 이 학교들은 서구 신문화 도입을 중시하고 제국주의 열강의 침략에 맞서 민중교육도 변행했다. 민족 지도자 양성, 민족의식 고취, 애국사상 함양 등은 이 학교들에게 절대 과제였다.
그러나 조선은 1910년 망했다.
일제 또한 교육의 영향력을 중시해 1911년 `조선교육령`을 공포했다. 군국주의에 철저히 충실한 일본 국민을 양성하는 것을 목표로 삼았다. 대신 민족성향이 짙은 사립학교는 무자비하게 탄압했다. 애써 공립학교를 육성한 목적도 그것이었다. 이 시기에 경북에서는 영덕영해초교 등 13개다. 하지만 학교들은 일제의 기대와 달리 민족교육에 애를 썼고, 민족의 얼과 언어, 역사, 문화를 지키려고 노력했다.
일제의 관제 교육을 우려한 민족지사들은 독자적으로 서당을 활용해 근대교육을 실시하기도 했다. 소위 말하는 `개량서당`이 그것이다. 물론 일제가 가만 있을 리는 없었고, 1918년엔 드디어 `서당규칙`까지 만들었다. 1929년엔 그걸 개정해 서당에 대한 통제와 감시를 더 강화하기도 했다. 서당마저 허가제로 묶은 것이다.
이에 민간에서는 일제 탄압을 피하기 위해 야간에 비공식적으로 교육하는 야학을 운영하기 시작했다. 단기적이지만 비교적 체계적으로 실시된 교육이 바로 야학이었다.
어쨌든 일제시대 보통학교, 사립학교, 공립학교 등으로 불리던 초등학교 명칭도 시대에 따라 달라졌다. 1938년 일제에 의해 `심상소학교`라 불리더니 1941년부터는 `국민학교`라는 이름을 달게 됐다. 그리고 그것에 군국주의 냄새가 있다고 해서 1996년 2월29일 초등학교로 바꾸었다.
/김남희기자 ysknh0808@kbmae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