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월은 가정의 달이다.
어린이날, 어버이날, 스승의 날, 부부의 날 모두 한 장의 달력에 사이좋게 모여 있다.
필자는 살아가면서 부모님이나 아내를 비롯한 주변의 사람들에게 약속을 어기거나, 잘 해 주지 못한 경우가 많았던 것 같다.
가장 먼저 있는 어린이날에 대한 아버지로서의 반성이다. 아들 둘의 어린 시절은 민주화의 격동기였다. 나는 갈등의 현장에 있는 경우가 많았고 아침 6시에 출근해 꼬박 하루를 직장에서 보내고, 다음 날 밤에 집에 오면 이미 애들은 잠들어 버린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당연히 아이들의 재롱을 볼 시간이 없었던 것이다. 한참 애들과 놀아주어야 할 시기에 자상한 아버지의 역할을 못한 점이 못내 아쉬움으로 남는다.
5월8일 어버이날은 반성을 더 많이 해야 한다. 흔히 베이비붐 세대를 말초세대라 표현하기도 하지만 나에겐 할 말이 더 없는 것 같다. 어린시절에는 조선시대 효자비를 세운 의미에 대해 깊이 알지 못했다. 자식이라면 당연히 효도를 해야 하는 것으로 알았기에 특별히 뜻을 기릴 필요까지 있나하고 가볍게 생각했는데 지천명을 훌쩍 넘은 이제야 효자는 아무나 되는 것이 아님을 깨닫는다.
나에게 근면성과 자립정신을 일깨워 주신 분은 아버지였다. 조실부모하고 고아처럼 자라 7남매를 키우느라 힘드셨는지 양복 한 벌 없이 평생을 보내셨다. 누나와 여동생이 있는 대구에도 잘 오시지 못하고 내 기억으로 여행을 가신 적도 거의 없는 듯하다. 그런 중 지난 2006년, 천붕을 맞이했는데 임종을 지켜보지 못해 더욱 죄스러울 뿐이다.
어머니는 막내와 생활을 하고 계신다.
최근 문상을 가서 들은 이야기이지만 친구의 장인께서도 장모님을 보내고 급격히 건강이 나빠져서 6개월 만에 돌아가셨다고 한다.
스트레스 중에서 가장 힘들고 큰 충격이 배우자와의 이별이라고 하는데 아버지께서 떠나신 이후, 어머니를 자주 찾아뵙지 못한 송구스러움에 다시 한번 실천을 다짐한다.
스승의날에는 보고 싶은 분들이 많지만 이젠 연락도 끊어져 안타까울 뿐이다.
먼 기억속이라 그런지 국민학교, 중학교 시절의 은사님들이 그리워지고, 구미에서 첫 담임이셨던 류성곤 선생님, 주례를 서 주신 천 교수님께서도 어떻게 지내시는지 궁금하다. 오늘의 나를 있게 해 주신 모든 스승님들께 감히 이 지면을 빌어 감사드려야겠다.
부부의 날은 5월21일이다.
아내와는 7년의 연애를 거쳐 결혼, 만난 지 30년이 넘었다. 공교롭게도 동네친구 중에서 연애는 가장 먼저하고 결혼은 제일 늦게 한 셈이다. 아무래도 오랜 기간 함께 살아온 연륜이 있어서인지 이젠 눈빛만 보고 음성만 들어도 기분을 짐작하고, 비 오는 날까지 알아맞힌다. 아마 부부통장에 차곡차곡 쌓아둔 신뢰와 배려, 호의 때문이 아니겠는가. 아내에게 미안한 것은 평소 약속을 많이 지키지 못한 것이다. 가장 흔했던 이야기는 일찍 들어간다 해 놓고 매번 어기는 것인데, 결혼 초부터 지금까지도 반성의 여지없이 지속되고 있다.
두 번째는 이 세상에서 누구보다 행복하고 멋있는 삶을 보장한다는 것이었다. 이 부분에 대해서는 남성들이 흔히 구혼할 때 단골로 등장하는 말이라서 큰 죄책감은 느끼지 않고 있다. 하지만 나는 아내를 행복의 문턱까지만 안내한 것 같다. 아직 아이들의 장래가 걱정이 되고, 어머님의 앞날에 신경이 쓰이고, 요리 못하는 남편도 마음이 안 놓이는 모양이다. 그래서 5월만큼은 아무리 일상에 바쁘다 하더라도 귀여운 자녀와 놀이공원으로 나들이를 가던지, 위인전을 읽어 주던지, 한적한 산골에서 애타게 자식을 기다리는 부모님을 방문하던지, 아내랑 무지개열차를 타고 추억의 여행을 떠나던지, 스승님의 은혜에 보답할 수 있는 소중한 기회 등을 만들어 보는 것이 어떨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