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살 파문은 경산시 자체 문제에서 이제 정치권에까지 번지며 큰 회오리를 일으키고 있다.
강압수사·인사비리·정치권 연루 의혹 등 규명 위해
내용 상반되는 유서·새 문건 진실여부 빨리 밝혀야
■경산시청 5급 공무원 자살 사건
경산시청 5급 공무원 A씨는 지난 4일 스스로 목숨을 끊었고 25장에 달하는 유서를 남겼다.
A씨는 유서에서 죄가 없는 자신에게 자백을 받으려고 검찰이 강압수사를 벌이고 또 최병국 시장을 끌어내리고자 검찰직원 출신으로 모 정당의 시의원인 B씨가 거짓자료를 제공한 기획수사라고 주장했다.
이 사건은 검찰의 강압수사와 최 시장이 승진인사 대가로 금품을 받았는가에 초점이 맞춰지는 양상으로 흘러가고 있다.
최 시장에 대해 지속적인 수사를 진행하고 있는 검찰은 최 시장의 측근으로 알려진 토목설계업자인 C씨의 자백을 통해 A씨와 2명의 공무원에 대한 조사를 벌여 A씨에게 구속영장을 청구했으나 기각당해 보강수사 중이었다.
하지만, 돌연 A씨가 자살을 선택하며 남긴 유서로 말미암아 대검이 대구지검에 대한 감찰을 진행하던 지난 13일 유서의 내용과는 다른 문건의 존재가 알려 졌다. 검찰의 강압수사를 거론하던 언론과 여론의 관심이 새로운 문건의 진실 여부로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
검찰 조사 기간에 A씨는 자살을 자주 언급했고 이미 작성한 유서를 타인에게 보여주는 등 자살을 결심한 사람이 보여주는 일반적인 행태에서 벗어나 자살을 예측한 주변인은 거의 없었다.
이는 수차례에 걸쳐 작성된 것으로 보이는 유서에 그토록 아끼던 가족에 대한 내용이 없기 때문이다.
지인들에 의하면 검찰수사로 자신이 형사처벌을 받으면 가족에게 남겨줄 퇴직금의 액수가 소액에 그쳐 병든 아내와 자식들, 그리고 노부를 걱정했다고 한다.
그럼에도, 갑작스런 자살을 택하면서 최 시장의 비리내용(?)이 담긴 또 다른 문서를 준비해 지인 D씨에게 남겼다. 유서에서 힘내라고 말한 최 시장에게 정치적인 타격을 가할 수 있는 문건을 작성해 만약의 경우 공개해 달라고 부탁한 이유가 무엇일까.
최 시장이 “인사를 이유로 돈을 받은 적이 없다”고 밝히고 있지만 지역민심은 양분돼 불편한 관계로 달리고 있어 두 문건의 진실성이 이른 시일 안에 규명되어야 할 필요성이 있다.
A씨는 4장의 문건을 통해 지난 12월 결혼식 때 모 과장이 축의금으로 1천만원을, 국장승진대상자인 다른 과장은 업자를 통해 수천만원을 전달하고 업무추진비를 대납한 계장들도 있으며 최 시장의 자서전을 대량으로 산 공무원, 2008년 공직선거법위반 재판의 소송비용으로 1억9천만원을 사용했다는 내용을 작성한 것으로 알려졌다.
사무관 승진 이후 수천만원의 금품을 최 시장의 측근인 출판업체를 통해 전달했다는 E씨는 “처벌도 감수하겠다”는 태도를 보이며 금품전달을 시인하고 있어 문건의 신빙성을 뒷받침하고 있다.
이 문건을 검찰에 제출했다는 D씨는 공개된 1장 이외 3장은 불태웠다는 주장을 하고 있으나 검찰이 나머지 3장도 보유하고 있다는, 보았다는 주장도 있어 많은 공무원이 밤잠을 설치고 있다.
아직 문건의 자필 여부는 가려지지 않았지만, D씨는 “지난 3월 말께 고인이 직접 전달하며 자세한 설명을 들었고 검찰에 전달해 자필로 확신한다”고 밝혔다.
또 문건을 검찰에 제출한 이유로 “문건의 내용을 믿지는 않지만, 고인의 뜻도 존중돼 사실 관계가 밝혀져야 한다”고 주장했다.
“비록 유서로 사법당국의 수사가 지지부진하고 A씨를 조사한 검찰 역시 조사를 받고 있지만 조속한 사법당국의 공정한 수사를 바란다”는 바램도 있다.
하지만, 4장의 문건이 세상에 알려지게 된 배경을 설명하는 여러 가지 소문이 나돌고 있어 정확한 이유를 시민들은 궁금해 하고 있다.
A씨는 유서를 통해 “자신은 최 시장의 측근이 아니다”고 주장했지만 대다수 사람들이 측근으로 인증하는 인물이 `왜 상반된 내용의 문건을 작성했을까`라는 의문점이 있다.
또 자살을 언급하며 유서를 타인에게 보여주었을까.
여기에 대한 대답은 최 시장을 압박하기 위한, 최 시장을 달래기 위한 A씨의 복잡한 마음으로 보는 시각이 많다.
공개된 제2의 문건 외에 제3, 4의 문건이 존재한다는 설이 널리 퍼진 이유이기도 하다.
최 시장의 공직선거법위반사건에 변호인 선임을 알선한 것으로 알려지고 최측근이었다는 주장과 함께 A씨 자살의 실마리를 제공한 C씨가 검찰에 A씨를 거론해 최 시장을 곤란하게 한 이유 등이 시민의 최대 관심사이나 정확하게 알려진 바는 없다.
더욱이 중요한 메시지가 담겨 있는 것으로 알려진 A씨의 휴대전화가 사라진 이유와 메시지 내용이 궁금증을 불러오고 있으나 어디에도 명확한 답이 없다.
모든 것을 아는 최 시장이 자신의 결백을 주장하고 있기 때문이다.
■두 종류의 문건을 바라보는 시민들과 공무원의 반응
지속적인 검찰의 수사에도 자신을 지킨 최병국 시장에 대해 A씨가 자필로 비리를 담은 문건을 남겼다는 사실에 시민과 공직자의 반응은 크게 두 가지다.
“그럴 리가”와 “그러면 그렇지!”로 나눠지고 있는데 전자는 최 시장이 결백을 주장하고 남을 공경하고 자신을 낮춘다는 삶의 춤 운동을 추진하는 등 새로운 모습을 보여주고 있어 믿지 못하겠다는 사람들이다.
후자는 `올 것이 왔다`는 강한 반감을 표시하며 유서도 믿지 못하겠다는 반응이다.
A씨가 검찰수사 중 뺨을 맞았다는 내용을 들은 것으로 알려진 공무원들의 진술도 엇갈리고 있다. A씨가 “자신의 혐의를 빼주는 대신 최 시장의 비리를 알려 주겠다”는 `딜`을 시도했던 것으로 검찰도 확인해주자 문건을 사실로 받아들이고 있다.
하지만, 이들 모두 빠른 사법당국의 수사로 양분되고 있는 민심이 어느 한 쪽으로 가야 할 것이란 명제에는 찬성하고 있다.
■문건이 사실로 밝혀질 때 지역에 미칠 파문
만약 새로운 문건이 자필로 판명되고 검찰의 수사가 진행되면 지역에 미칠 파문은 가늠하기 어렵다.
유족의 유서공개로 힘을 얻으며 모 정당을 강하게 비판, 정치적인 문제를 거론했던 최 시장이 가장 큰 타격을 받겠지만, 문건에 이름이 오른 공무원의 처벌수위에 따라 공직사회에 회오리바람이 몰아치게 된다.
이들이 형사적인 처벌을 받는다면 공직자의 신분을 유지할 수 없게 돼 공직의 공백이 예상된다. 더욱이 전임 시장이 공천헌금으로 시장직위를 상실했던 나쁜 기억이 다시 수면에 떠오르는 등 엄청난 파장이 우려된다.
또 최 시장의 결백을 믿으며 삶의 춤 운동을 위해 새벽마다 자전거를 타고 쓰레기를 주웠던 시민의 허탈감과 인재를 적재적소에 배치하고 등용했다는 그동안 경산시 인사의 허구성, 금품으로 자리를 사겠다는 공직자의 비양심이 공직사회를 신뢰하지 못하게 할 것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사법당국의 공정한 수사결과가 유서와 새로운 문건으로 양분된 지역민심을 하나로 묶는 처방전이 되고 새로운 시작을 알리는 신호탄이 될 것으로 시민들은 보고 있다.
경산/심한식기자 shs1127@kbmae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