혼자 있으면 중후한 시간의 몸, 몸들이지만모아놓으면 구겨지고 볼품없어지고뒤집어진 내 뒷머리처럼 통속하다누런 모자 쓰고 비닐 완장 차고비상교육 받는 새벽 민방위 훈련장에서몸서리 쳐지는 이 중년몸이 세상의 화엄 만드는 화음이라 믿었는데이제는 소리가 될 수 없는 불협화음의 몸, 몸들몸이 칼 되어 오와 열 맞추던 시절 있었는데앞줄 옆줄 아무 줄도 맞춰 설 수 없는 세월 왔다후줄근한 몸으로 내가 나를 찾아왔다시인은 의욕적이고 강단졌던 삶의 열기와 쇠라도 녹일듯 했던 탄탄한 몸을 가졌던 지난 시간들을 돌아보며, 이제는 의욕도 줄어들고 몸도 느슨하게 탄력을 잃어버린 중년의 나이를 지나고 있음을 느끼고 있다. 그러나 어쩌랴 하늘의 순리인 것을. 비록 불협화음의 몸을 품고 몸서리 쳐지는 중년의 나이를 건너지만 살아오면서 터득한 삶의 여유와 생을 관조할 수 있는 눈이 생기지 않았는가. 시인의 다 하지 않은 말을 바람 속에 듣는 아침이다.시인
2017-08-16
젊어 떠난 지손(支孫)들 달구소리로 낙향을 아뢰는선산 소낭구를 지게작대기로 받치고 선 늙은 종손이여쑥대밭의 위토탑과 무너진 사당 아래 맥도널드 광고판이 세워지는데어디에 무릎을 꿇고 영천강 애진 은발의 갈대처럼 울며 고할 것이냐쓰러지는 가업과 절손된 가문의 종손 농부여영천강 북천 물소리가 키우는 커다란 적막 속으로또 무슨 핑계로 천둥은 치는가 놋날 다루듯 소낙비는 치는가너무 높은 봉분을 걱정하며 종손은 또 애가 마른다천둥 그늘을 밟고 서서 우는 선산 굽은 소낭구쑥대밭의 위토탑과 무너진 사당 아래 맥도널드 광고판이 들어서는 아이러니가 지금의 농촌 현실이다. 세계적 농업자본주의 폐해가 농부시인의 삶의 현장을 깊이 들이치고 있는 것이다. 아무리 애쓰고 피땀을 흘려도 수입산 외국농산물 때문에 갈수록 피폐해지는 농촌 현실을 시인은 천둥 그늘을 밟고 서서 우는 선산 굽은 소나무처럼 절규하고 있는 것이다.시인
2017-08-14
내 안에는폐(閉)의 기능을 상실해버린낡은 문 하나가 살고 있다빗장 지를 휜 숟가락마저부식된 지 이미 오래인 위태한 문어긋나고 뒤틀려안팎의 경계가 지워져버린 문문짝을 땐다반쯤 빠져 휘어진 중못 새로 갈고찍찍 벌어진 문설주도 손보고닳아 내려앉은 모서리에미싱기름 몇 방울 목 축여무쇠 문고리 한 벌 암수로 박아놓으니제법 말짱하다문을 연다, 저렇듯 환한개(開)!문을 닫는다, 이렇듯 완고한폐(閉)!시인이 추구하는 것은 무엇일까. 침묵 속에서 완전히 자신을 봉인하고 외부와의 단절을 추구하는가 하면 어디로도 소통하고 열리는 자아를 열망하고 있는 것이다. 이것도 저것도 아닌 잘 열리지도 잘 닫히지도 않는 어중간한 문이 아니라 자신을 온전한 침묵에 들도록 닫히는 문과 자신을 드러낼 수 있는 완전한 문을 염원하고 있는 것이다. 시인의 내적 성찰이 잘 드러난 작품이다. 시인
2017-08-11
기우뚱, 집이 혼자서 중얼거리면 벽에 그어 놓은 치부책에서 화투짝이 난다. 손님이 패를 돌리자 뒷방에는 여자들의 웃음소리가 시끄럽게 들리고, 패가 왼쪽에서 오른쪽으로 돌아간 자국을 따라 뱀이 집안의 내력을 또아리 틀고, 일찍부터 술 취한 쥐들이 천장에서 몽상의 발자국 소릴 내고, 새들이 물어온 지푸라기를 따라 난 산길에는 돌맹이들이 시끄럽게 떠들어대며 겨울 저녁내 살 비빈다.시인이 설정한 빈 집에는 뱀과 쥐와 새들만 사는 것이 아니다. 외롭게 한 생을 마감해가는 노인도 함께 살아가고 있는 것이다. 이 을씨년스런 풍경 속에서 시인은 무엇을 말하고 있는 것일까. 빈집이라고 가만히 정체되어 있고 시간이 멈춰있는 것은 아니라는 것이다. 수많은 생명체들이 부단히 그들의 삶을 살아가는 한 공간으로서 빈 집도 의미있는 생명의 터전인 것이다.시인
2017-08-10
오동보라가 좋으세요?모본단 안감은 얇아야 하느니힘은 싱이 잡아주는 거제시침해서 창구녕으로 팔 빼는데참 딱한 노릇은 팔이 넷인 거라시작이 서툴면 울기만 하제편치 몬하믄 다려도 주름지는 거라앗! 따가버라바늘이 피맛에 길드는갑다시대가 변해도등솔은 진솔로 박아야 하제진동은 따라 곧아지고자로 잰 드키 썩뚝 마르믄손톱여물 써는 거라 가위 밥 주고도련 따라 섶코 슬쩍 들 줄도 알아야 하느니숙고사 물모시도 다를 바 없느니옷 한 벌로 평생 사는 짐승들은 좋겠어요음마, 이 가시나 무녀리네시 전체에 얽어매는 걸쭉한 경상도 사투리가 정겹고 재밌다. 요란하고 현란한, 칼러풀한 색깔과 속도의 시대를 살고 있는 우리에게 담백하고 수수한, 느리고 참참히 손길을 보태는 재래식 바느질의 과정을 섬세한 언어로 풀어가는 시인의 말을 따라가다보면 어느듯 삼겹 저고리 한 벌을 지어내는 듯한 느낌을 받는다. 사라져가는 것들을 간절히 지키려는 시인 정신을 본다.시인
2017-08-09
50년 전 떠났던 고향그때보다도 더 초라해 시골 마을한적한 동네 한복판궁전같이 크기만 했던 기와집은아버지가 태어나고그리고 또우리 형제자매가 태어나서어머니의 젖을 먹고 자랐던 곳증조부가 묻힌 뒷동산은 더 울창한데거의 쓰러져가는 고향집엔낯도 이름도 모르는 사람들이 산다그리운 옛집에 대한 회상에 잠긴 시인의 마음을 따라가 본다. 오래된 고택에는 가족사가 심어져있다. 할아버지도 아버지도 나도 태어나 자랐던 정겹고 사랑이 묻어나는 둥지인 것이다비록 지금은 남의 집이 되어버렸지만 고향집에는 지울 수 없는 가족들의 얘기가 푸르게 살아있는 것이리라. 그리움이 밀려오는 아침이다.시인
2017-08-08
식구들과 함께 애써 살림 일구던 집이다조잘조잘 책 읽으며 형제들과 공부하던 집이다가족들 데리고 제금 난지 십년이 넘는 집이다어른들 다 돌아가신 지 오래된 집이다이제는 삼촌들과 아우들의 차지가 된 집이다옛 식구들 껴안고 문득 살 부비고 싶은 집이다손으로 두드려서는 문 열어주지 않는 집이다더는 깊고 두터운 정 주지 않기로 한 집이다남은 사람들 남은 방 잘도 차지하고 사는 집이다삼촌들이며 아우들과도 인연 다 끊어진 집이다그런 줄 잘 알면서도 가끔은 마음 달아오르는 집이다어린 시절부터 살아온 옛집인데 이제는 남의 집이 된 시인의 옛집에 대한 그리움이 진하게 스민 시다. 식구들과 혈육의 정을 나누며 오순도순 살아온 집에는 사랑의 흔적이 남아 있고 뇌리 속에는 그리운 것들이 고스란히 살아있다. 그래서 가끔은 마음 달아오르게 하는 것이 옛집인 것이다. 사람처럼 낡고 헐어가는 집이지만 옛집에 대한 아련한 그리움은 누구에게나 오래오래 가슴 속에 살아있는 것이다.시인
2017-08-07
비 오시는 꽃밭이 어두워진다 꽃잎에 맺힌 물방울 속, 산과 하늘과 나무와 꽃들이 절벽처럼 에둘러 있다 세계의 문이 닫히듯 물방울 하나 폭 꺼진다 엷은 빛에 기대어 수천 겹 층을 이룬 만상의 색상, 마침내 얇고 어두운 막을 벗어나 꽃밭으로 녹아든다 여러 번 생을 살아도 거듭, 주저 없이 흘러가는 육체들의 검은 강살붙이여 무변 허공을 질러와 또 점점 부푸는 물방울이여, 더는 매달릴 수 없을 때 누구도 닦아줄 수 없는 물방울 속으로 소리 없이 낯익은 미움이 지나간다꽃의 발등이 적막하게 물에 잠긴다생에 대한 미련과 욕망이 혼재돼 있는 시다. 비 오는 꽃밭은 화사함을 잃고 어둠에 잠긴다. 드세게 비가 내리면 여러 상처를 입으며 더 이상 아름다운 꽃밭이 아니다. 우리네 한 생도 그런 것은 아닐까. 참혹하고 적막한 우리의 삶을 비오는 꽃밭, 검은 꽃밭에 비유하고 있는 이 시에서 우리의 삶을 돌아보게 하는 시인의 목소리를 듣는다.시인
2017-08-04
단숨에 밤하늘을 두 쪽 내고 오르는 울음이 있다누워있던 골목까지 다 따라 솟구친다몸속에 날선 칼이 있어야만 저렇게 울 수 있을게다저 울음이 자유로울 동안 모두들 숨죽이고 있어야 한다어둠도 목덜미 물린 채 꼼짝 못하고자지러지게 울던 아이도 새파랗게 울던 삐삐주전자도시도 때도 없이 울던 알람시계도 소리 내지 못한다울어라 울어 실컷 울어, 고양이만 우는 게 아니다너도 울고 나도 울지만한 번도 곁을 주지 않는 울음에는 평생 주인이 없다한 번도 곁을 주지 않는 익명의 울음, 알 수 없는 울음에 시인의 마음이 가 있음을 본다. 철저하게 익명이면서 고독한 울음만이 듣는 사람을 숨죽이게 하고 짙은 어둠마저도 꼼짝 못하게 하는 것이리라. 인간의 근원적인 고립과 고독에 대한 시인의 깊은 인식이 비춰져 있는 작품이다.시인
2017-08-03
귀여운아이하나가벌써, 말을 하던가요`엄마`저의 일은 땅 위에 눈물 하나를가만히 놓고 가는 일뿐이에요라고하늘에 망망히 웃는아침 꽃밭가에서우주의 한 현상이면서 사소한 일의 하나인 이슬 한 방울 내리는 일에도 의미를 부여하는 시인의 인식이 참 밝다. 이슬 한 방울도 한 아이가 태어나는 일에 비유하며 생명을 얹어놓고 있다. 그냥 왔다가 햇살에 말라 없어지는 것이 아니라 눈물 한 방울 흘리고 가는 일로 읽어내고 있다. 하물며 이슬 한 방울도 이 땅에 의미없이 왔다 사라지는 일이 아니거늘 우리네 한 생은 얼마나 소중하고 의미있는 일인가.시인
2017-08-02
이 세상 왔다 가는데무슨 묘비가 필요한가봄에는 진달래 산천그것이면 족하지 않나여름에는 흰 구름 산을 넘고그 하늘만 바라보면 그것으로 족하지가을에 단풍 들어 나뭇잎 지면산들바람 불어 먼 산을 돌아나가고겨울엔 흰 눈 내려 가지마다 꽃인데그 꽃만 바라보면 되는 것을돌에 새겨 둔 몇 자의 글귀가영원히 잠자는 시인에게 무슨 소용 있으랴경주의 원로시인인 정민호 시인은 평생을 겸허한 무위의 시를 써온 시인이다. 정민호 시인은 우리시대의 진정한 선비이고 비움을 실천해온 시인이다. 어느 시인의 묘비를 바라보면서 자연에서 왔다가 자연으로 돌아가는데 무슨 묘비가 필요한 것이냐고 반문하며 그 어떤 세속적인 명예나 소유나 욕망도 버리겠다는 마음을 펴 보이고 있는 것이다. 무욕의 삶으로 일관되었던 시인의 생을 관조하는 그윽하고 따스한, 깊은 눈빛이 그리워지는 아침이다.시인
2017-07-31
가창골 깊은 숲 속에서 울었다당신과 나 이렇게 먼 거리를 두고뼈마디 녹이는 그리움으로어두운 골짜기에 모가지를 떨구고흐느끼고 있는지스산한 바람 끝으로 다가와아무 말 없이 잠시 머물다 가는 당신은내 발 목 묶어둔 채저만치 물러서고 있어야만 하는지한 사람을 사랑하는 것은 뼈마디 녹이는 그리움을 동반한다. 그 한 사람의 부재에 따른 슬픔과 아픔은 이루 말할 수 없는 고통이다. 어두운 골짜기에 모가지를 떨구고, 흐느끼고, 끝내는 발목 묶어 두고 그리움을 깊게 만들어가는 것이다. 절절한 사랑의 시가 아닐 수 없다.시인
2017-07-28
이 악어는 우리가 본 악어 중 가장 크게 여겨진다과장이 심했기 때문인데그러나 무섭지 않은 악어어슬렁거리지 않고 화가의 작업실 한 구석에 놓여 있다두터운 갑피는 하나하나 다른 모양으로우리 삶터 곳곳에 숨어 있다가 화가에게 들킨 것이다쓰레기 하치장, 폐차장, 고물상 어디에나그는 악어 조각을 찾아다녔다 악어가 될 만하면뭐든 사 모으고 주워 모았다온갖 쇠 파이프들 용접하면서그는 악어처럼 마음과 몸 뒤틀었다불꽃이 튀어도 악어처럼 악문 쇠 놓지 않은 채온몸 뒤틀어댔다시인이 말하는 악어는 무엇일까. 우리들 삶의 여러 곳에서 발견되는 버려진 쇳조각을 시인은 은유적으로 표현하고 있다. 이 날카롭고 예리하고 무게를 가진 쇳조각은 문명이 낳은 부산물이다. 무엇이든 덥석 물 것 같은 이 악어는 문명이라는 늪의 밑바닥에서 출몰하는 것이다. 때로는 예술가의 손에서 의미있는 스틸 작품으로 환생하기도 하는 것이지만 시인은 문명이 가진 금속성의 비정함 같은 것을 말하고 있는 것이다.시인
2017-07-27
추억으로 짜놓은 황금빛 깃털달콤하던 순간을 쪼려면매번 따라나온 적막이빛나는 부리를 지워버리네그녀의 미래는 풀었다 다시 짜는 과거조금씩 작아지고 낡아가며실패한 군대 깃발처럼 솔기가 터져매일 밤 새로운 부리를 깁고 있다네그녀의 옷장이 분주하다네오래된 옷장에는 오래된 시간들과 그 시간들이 녹아있는 추억들이 소복하다. 그 달콤했던 시간들이 이제는 적막에 쌓인, 허망하기 짝이 없는 것들로 쌓여있는 것이다. 새로운 시간들이 시시각각 다가오는 현실과 희망차게 다가올 미래를 열어가려는 시인에게는 오래된 옷장 속의 낡은 추억들마저도 버릴 수 없는 소중한 것들이다. 그게 인생이다.시인
2017-07-26
단순한 사랑에 대해 생각하다가감기에 걸렸습니다단순한 사랑에 대해 생각하다가호두나무 울타리 속의 그대를 떠올렸습니다가을이 되면 모과향으로 변하는 그대의 미소며칠 동안의 기침이 노을로 바뀌자나는 붉은 이마를 식히기 위해거리의 저녁들을 마구 쏘다니기 시작했습니다시인이 말하는 단순한 사랑은 무얼까. 문자가 품고 있는 의미처럼 그저 복잡하지 않는 단순한 사랑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사랑 바깥의 많은 조건들이나 경우들을 배제한 순수하고 진실한 사랑을 의미하는 것이다. 그런 사랑은 그리 화려하지도 시끌벅적하지도 않다. 가만히 그대를 떠올리고 감기에 들기도 하고 가슴을 붉게 달아오르게 하고 거리의 저녁을 마구 쏘다니게 하는 것이다.시인
2017-07-25
낙강아,목숨처럼 귀한 그대 이름 걸고고상한 몸짓으로아무렇게나 북북 시를 써 갈겨 내려가던그 많던 시인묵객들어디로 가버리고아, 비방 어디로들 떠나버리고그대는 저렇듯이찢기고 할퀴고처절하게 유린당한 채눈물만 흘리고 있는가말하라 낙강아!대답하라 강물아!유유히 흐름을 이어가는 낙동강을 바라보며 그 속에 녹아있는 깊고 긴 연대기를 읽는 시인의 가슴이 젖어있음을 느낀다. 민족의 반 허리를 면면히 흘러가며 수많은 시대의 민초들의 삶을 건너다 보고 품어주며 그들의 기쁨과 슬픔을 함께해준 강이 낙동강임을 풀어내고 있다. 강변에서 시를 읊던 시인 묵객들도, 총을 쥐고 피흘리던 유월의 병사들도 이제는 모두들 먼 시간의 강둑 너머로 떠나가버린 것을 시인의 젖은 가슴은 되살려내고 있는 것이다.시인
2017-07-24
꽃을 들지 마라함부로 꽃을 든 죄천지에 사무쳤으니저기진달래꽃 씹으며문둥이가 온다시인이 바라보는 이승은 병든 세상이요, 구원과 한량없는 자비가 필요한 화농의 세상이다. 불타는 번뇌의 세상이다. 시인은 그런 세상을 문둥이로 표현하고 있는 것이다. 시인은 이러한 처절한 세상에서 인간은 어떻게 구원받을 것인가에 대해 물음을 던지고 있는 것이다.
2017-07-21
내 전생(前生)은공룡이었을까독수리이었을까아니다 아니다한 방울 빗물이었거나한 알 모래이었으리지렁이로 마음 바꿔 살면서자취 없이 이승을 지우고흙먼지로 환생하리라한 생을 살아오면서 가끔은 내 근본에 대한 그리움이랄까, 의문을 가질 때가 있다. 전생에 나는 무엇이었을까 하는 물음을 자신에게 물어보는 것이다. 시인은 겸허한 마음으로 한 알 모래였을 것이라 생각하고 무욕의 정신을 가다듬고 후생에도 미미한 흙먼지로 되살아나겠다는 생각을 한다. 이 얼마나 겸허한 마음인가. 비우고 또 비워내고자 하는 무욕의 시인 정신을 본다.시인
2017-07-20
여섯 살 된 딸이 생선을 먹다가 목에 가시가 걸렸다 밥 한 숟가락을 떠 씹지 말고 삼키라고 했다 딸아이는 울며 입속의 밥을 연신 우물거린다 씹지 말고 삼켜라 그냥 씹지 말고!어릴 적 나도 호되게 생선가시 하나가 목에 걸린 적이 있다 밥이 삼켜지지 않았다 아버지는 직접 밥 한 숟가락을 떠 꿀꺽, 씹지도 않고 삼켜 보였다 그리고 아, 입을 벌려 당신의 입속을 나에게 보여주었다지금은 이승에 계시지 않은 아버님 어머님에 대한 그리움이 가득 스민 참 착한 시 한 편을 본다. 필자가 만난 고영민 시인의 심성은 그지없이 착하고 순하고 진실한 사람이라는 느낌을 떨쳐버릴 수 없다. 이제는 시인이 아버지가 되어 아이를 양육하지만 돌아가신 부모님의 그 정성과 사랑, 헌신을 떠올리고 있는 것이다. 따스하고 아름다운 시편이다.시인
2017-07-19
열세 살인데 왜 죽어야 했나스물두 살에 왜 죽어야 했나일흔일곱 살에도 왜 죽어야 하나꽁지 톰방한 저 어린 숲종다리는오늘 아침 어디서 왔나평생을 인식론과 존재론 같은 인간실존의 문제를 가르치며 시를 써온 노시인이 쓴 시다. 자신의 죽음을 예견하고 삶과 죽음에 대한 깊은 성찰이 묻어난다. 삼라만상의 모든 것이 생명을 얻어 태어나고 언젠가는 반드시 죽음에 이른다는 평범한 진리지만 시인은 어린 숲종달새를 바라보면서 자신에게 삶과 죽음에 대해 가만히 묻고 있는 것이다. 잔잔한 감동의 울림이 번지는 아침이다.시인
2017-07-1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