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나는 순결하다누가 투명한 보자기에몰래 비밀 하나를 써서 감추고살짝 돌아서는 모습이 깡총한 것처럼나는 고독하다소유하지 못한 세상의더 많은 것들을 욕망하다가갑자기 솟구치는 음악이 위태로운 것처럼나는 불온하다기억의 명료한 서랍 속에서는아직도 사각사각 흰 눈이 내리는데내려서 아주 질서정연하게 쌓이는데가끔은 마른 풀냄새 같은 걸 안고와서이쁘게 풀어 놓고 가는 바람을바람의 속내를 마주 보지 못하고짐짓 돌아서 있어야 하는지금 나는 거짓이다시인은 자신이 고독하고 불온하다고 말하면서 순결하다고 말한다. 자기고백을 시작하는 이 시에서 시인이 세상을 향해 던지는 목소리를 듣는다. 세상은 순결의 가면을 쓰고 불온하고 고독한 상태에서 태연하다는 것이다. 아무도 이런 점에서 자유롭지 못하지만 시인은 그런 이중의 현실을 거짓이라고 당당히 말하고 있는 것이다. 날 선 시인의 현실인식을 본다.시인
2017-11-16
히말라야 설산 높은 곳에서 흘러내리는 물을 받아물속에 숨어 있는 소금을 받아내는 평생 노역이 있다소금이 무한량으로 넘치는 세상소금을 신이 내려주는 생명의 선물로 받아소금을 순금보다 소중하게 모시며자신의 당나귀와 평등하게 나눠 먹는 사람이 있다시인의 인생관이 고스란히 읽혀지는 참 착한 시가 아닐 수 없다. 소금이라는 매체를 통해 서로 나누고 공유하며 나란히 평행하는 삶의 자세를 소개하면서 평생 그렇게 살아가고자 하는 시인정신을 읽는다. 안분지족(安分知足), 세상을 향해 던지는 고요한 울림이다.시인
2017-11-15
오줌줄기 쩍쩍 얼어붙는 판장에서힘줄 시퍼런 명태 뛴다대진 가자동해가 길을 막고몇날 며칠 눈이 지붕을 덮으면세상 모르고 싸다니는 아이들 집안에 몰아넣고겨울과 맞서는 북쪽 포구허름한 술집에서눈물 콧물 훌쩍이며언 속에 소주 한 양재기씩 털어넣고찌개 냄비에 얼굴을 묻었다가돌아오자세상을 뚫고 돌아오자온천지에 폭설이 내려 길이 닫히고 소통이 단절된 듯한 북쪽 포구에서 시인은 쓸쓸한 마음을 풀어내고 있다. 변방이 주는 고적함과 그리움이 깊음을 본다. 허름한 항구의 선술집에서 쓸쓸한 세상을 소주잔에 타서 마시며 세상을 바라보자고 한다. 아니 세상을 뚫고 돌아오자고 한다. 폭설에 갇힌 항구도 사람들도 소주 몇 잔 마시며 세상을 바라보는 쓸쓸한 풍경 하나, 그림 하나를 본다.시인
2017-11-14
집이 우리를 떠나면 빈집이 된다우리가 집을 떠날 때도 빈집이 된다우리는 자주 떠나가려 하고떠나서는 돌아오지 말라고 한다그래서 집은 아직도 빈집으로 있는데그래도 그리움이 조금은 남아 있다그러니 빈집은 완전 빈집이 아니다그 속에는 아직 옛날 화려함이 남아 있고빈방마다 그때의 화려한 꿈들이 들어 있다빈집은 결코 빈집만은 아니다마당에는 잡초가 무성하고지붕 위에도 아직 참새들이 살아 있다그 옛날을 노래하며 집을 지키는데그래서 빈집은 아주 빈집이 아닌데도집은 지금껏 빈집으로 남아 있고하늘에는 빈 하늘만 남아 있다고향에 대한 그리움이 전편에 스며있는 이 시는 고향집에서의 추억과 잊지 못할 서사들을 반추하고 있음을 본다. 언제 어디에 있어도 그리움은 가슴 속에 일렁이는 것이 인지상정이다. 힘겹고 어려운 생의 현실을 견디고 극복해 가면서 행복한 삶을 기다리며 간절히 염원하고 있음을 느낄 수 있다. 노시인의 깊은 가슴과 아련히 그리움에 젖은 눈을 생각해 본다.시인
2017-11-13
아이들 운동화는대문 옆 담장 위에 말려야지우리 집에 막 발을 내딛는첫 햇살로 말려야지어른들 신발은 지붕에 올려놔야지개가 물어가지만 않으면 되니까높고 험한 데로 밥벌이하려 나가야 하니까어릴 적에 할머니께서 가르쳐주셨지북망산천 가까운 사랑방 툇마루에당신은, 단신 흰 고무신을 말리셨지노을빛에 말리셨지어둔 저승길, 미리 넘어져보는 거야달빛에 엎어놓으셨지저물어도 거둬들이지 않으셨지마지막은 다 밤길이야젖은 신발이 고꾸라져 있었지신발을 제재로 한 재미나고 의미가 깊은 시다. 아이들의 신발은 깨끗하고 맑은 첫 햇살 드는 담장 위에 말리고 어른들의 신발은 높고 험한 데로 가서 밥벌이 해야하니 높은 지붕 위에 말리고. 머지않아 저승길 가실 할머니 신발은 사랑방 툇마루에 말려야한다는 시인의 말에 미소를 머금지 않을 수 없다. 가만히 생을 관조하는 시인의 혜안을 본다.시인
2017-11-10
나 물한리 가네물한리 가서 이 세상 쏟아내지 못한 말 쏟으려 하네시원의 터 거기나 물한리 가네 물한리 가서물 속에 잠든 그리움 건져 올리는 물까마귀 되려네꼬리 흔들던 다람쥐는 볼이 볼록한 채 달아나고살집좋은 들고양이 눈을 빛내는 물가아직도 공중을 빙빙 도는 저 가마우지 눈을 피해가슴 속 뜨거운 말 담아 넣는 색짙은 날개짓이 되려네물한리 한줌 소리없이 풀꽃이 피고물한리 물한리 아득한 당신에게 흘러갈나 낮은 물소리 되겠네이 시에서 말하는 물한리는 존재의 해방이 있는 공간이며 자유롭고 안전한 공간을 일컫는다. 현실의 힘겨움이나 결핍, 고통, 상처를 치유해줄 수 있는 안식의 공간이고 생명의 활기를 공급해주는 공간이다. 현대인들에게 물한리는 염원의 공간이다. 어쩌면 우리 모두는 유형무형의 물한리 하나쯤은 가슴 속에 간직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시인
2017-11-09
나는 너만의 것이어야 한다너는 나만의 것이어야 한다너는 나만을 가져야 한다나는 너만을 가져야 한다숲이 한 마리의 새만을 품지 않듯작은 새도 하나의 숲에 머물지 않는다구름이 지나면 바람이 일고바람이 일어나면 구름도 길을 떠난다나는 너를 놓아주어야 한다나의 형틀에 갇힌 새여너의 형틀에 갇힌 나 또한 놓아다오남녀의 사랑을 비유적으로 쓴 소유의 슬픔에 대한 이 시는 많은 것을 느끼게 해준다. 인간의 욕망은 집요하고 가끔은 절대적이다. 사랑하는 사람을 절대 놓아 보내지 않으려는 마음은 어쩌면 사랑의 본질인지도 모른다. 그러나 진정한 사랑은 놓아주고 풀려나야 하는 것은 아닐까. 세상을 지배하는 이념이나 사상도 결코 불변의 가치를 가진 절대적인 것은 아니다. 극단의 사랑은 참다운 사랑이 아니다. 남을 수용하고 인정하지 못하는 사랑을 어찌 진정한 사랑이라고 말할 수 있겠는가.시인
2017-11-08
세월의 허공을무리지어 휘저어도흰 피 토하는 그리움 뿐산자락 내리 골넓은 벌 자리하여허무의 강에 빠져헤어나지 못하는 몸부림은끝내 사라질 바람의 울음일 뿐불붙어 뜀박질하는 단풍들지난 삶제 모습돌아보며 내쉬는 한숨저것은내 삶을 응시하는 서걱임일까헤아릴 수 없는 소리의 외침일까억새 비탈에 서서 시인은 서걱이는 울음소리를 듣는다. 살아오는 동안 가슴에 쌓여 울음이 된 상처들이 바람에 흔들리며 하얗게 꽃을 날리며 울고 있는 억새를 보면서 하나씩 풀어져 같이 날리어가는 느낌을 풀어내고 있는 것이다. 지나고 나면 모든 것이 허무하기 짝이없는 인생살이인 것을 아옹다옹 더 가지려고 더 나아지려고 발버둥쳤던 지난날들을 바람 부는 그 언덕에서 뒤돌아보고 있는 것이다. 그게 우리네 한 생이 아닐까.시인
2017-11-07
거대한 우주선 군단이하늘을 낮게 지나가듯구름떼가 일제히 이동하다대책 없는 사물들 죄다비명 지르고 빛을 잃다네 말처럼이 세상은 죄가 없다천둥벌거숭이 하나두 팔 벌리고사방 뛰어다닌다외계인의 재앙영화 같은 얘기로 시작되는 이 시는 존재의 절망에 대해 쓰고 있음을 본다. 우리는 천둥벌거숭이인지 모른다. 존재의 의미와 가치를 상실하거나 망각한 채 두 팔 벌리고 사방을 뛰어다니고 있는 것처럼 방향성과 목적성 없이 어디론가 마구 달려가고 있는 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 때가 있다. 시인
2017-11-06
당신이 내 앞에 있었다지진은 그때부터 시작되었다강력한 쓰나미의 해일이 지구를 덮쳐 버렸다오 맙소사!우리는재앙의 비를 사랑이 비라고 고쳐 불렀다아무리 사랑의 비라고 고쳐 불러도사랑은 대답이 없었다폐허의 가슴과 가슴이 지붕을 이뤄오래 폐허로 살았다당신은 어느 날내 몸의 폐허까지 온몸에 휘감고해일에 휩쓸려 몸 날렸지만내 몸부림치는 폐허는 더 터를 넓혀 갔다흔들흔들흔들흔들아직도 여진은 계속지진, 해일, 폐허 같은 시어를 동원해 사랑의 아픔을 말하고 있다. 처참한 재해의 재앙 같은 것이 밀려오는 비극적 사랑을 말하면서 동시에 그 아픔들을 견디고 이겨내어 구원에 이르는 성숙된 사랑을 말하고 있음을 본다. 사랑은 비극인 동시에 희극이며 아무리 상처가 깊어도 해볼만 한 것이라는 느낌을 안겨주고 있는 작품이다.시인
2017-11-03
너와 나 사이둥근 금줄이여어느 하루 편한 날 없었다빛이 끝나는 그곳을바라보고 바라보고 바라보아도잴 수 없는 거리여하늘의 천둥 번개도바다의 해일도 지우지 못하는내 마음 수평선이여하늘과 바다가 맞닿은 수평선을 바라보며 시인은 자신의 마음 속에 있는 경계선을 말하고 있다. 사람과 사람 사이에 그어 놓은 선은 도저히 다가가서 들어설 수 없는 단절의 관계를 의미한다. 시인은 그러한 냉엄한 관계를 상징하는 직선을 지워내고 화해와 공유의 둥근 선을 염원하고 있는 것이다.시인
2017-11-02
신의주까지 갈 거야그리운 서울 가는 길부드러운 산과 들, 밥알 같은 마을 위에깨끗한 눈물처럼 햇살이 맺힐 때그래 형제들아 이대로 신의주까지 갈 거야개여울의 물살처럼 가슴은 흔들리고그날이 오면 한라에서 백두삼수갑산서 목포까지 걷기대회가 열릴 거야나팔이 울리고 장구가 덩더쿵거리고꽹과리 신이 나면 남에서 북에서얼싸안고 뛸 거야토끼풀과 머루를 따먹으며다디단 황토로 배를 채우며끝에서 끝까지 걷고 걸을 거야외줄기 서울길 치달리다 보면철조망도 포고문도 뚫어버리고화약고 지뢰밭 밀어버리고말 달리 듯 한없이 갈 것만 같아죄어오는 숨막힘터질 듯 할 거야서울에서 좀 더 북쪽으로 내달으면 분단의 상징인 휴전선 철조망이 있고 남북을 잇는 도로는 막혀있다. 시인은 서울을 거쳐 북쪽으로 달려가 남북이 하나되는 꿈을 꾸고 있는 것이다. 한민족의 한과 염원이 서린 통일조국을 염원하고 있는 것이다. 남북의 통일 뿐만 아니라 갈등과 대립이 있는 곳에 화해와 협력을 바라고, 계층과 계층이, 지역과 지역이, 세대와 세대가, 백두와 한라가 서로 가슴과 가슴으로 이어져 빛나는 화해의 광장을 간절히 염원하고 있는 것이다.시인
2017-11-01
고추밭을 걷어내다가그늘에서 늙은 호박 하나를 발견했다뜻밖의 수확을 들어올리려는데흙 속에 처박힌 달디단 그녀의 젖을온갖 벌레들이 오글오글 빨고 있는 게 아닌가어찌 보면 소신공양을 위해타닥타닥 타고 있는 불꽃들 같기도 했다그 은밀한 의식을 훔쳐보다가나는 말라가는 고추대를 덮어주고 돌아왔다가을갈이를 하려고 밭에 다시 가보니호박은 온데간데 없었다불꽃들도 흙 속에 잦아든 지 오래다그런데 자세히 들여다보니그녀는 어느새 젖을 다 비우고잘 마른 종잇장처럼 땅에 엎드려 있는 게 아닌가스스로의 죽음을 덮고 있는관뚜껑을 나는 조심스럽게 들어올렸다한 웅큼 남아 있는 둥근 사리들!고추밭에서 익은 늙은 호박이 검은 벌레들에게 제 살갗을 다 주고 잘 마른 종잇장처럼 죽음을 맞이한 모습을 보고 시인은 거룩한 소신공양을 읽어내고 있다. 자신의 몸을 내 주어 수많은 생명을 살려내고 죽은 하찮은 호박의 얘기지만 이기적인 인생들을 향한 메시지를 던져주고 있는 것이리라.시인
2017-10-31
잠시 전에 내 몸이었던 것이땀이 되어 나를 비집고 나온다표정 순하던 내 얼굴들이물이 되어 흘러내려 사라진다내 얼굴은 물의 흔적이다당신의 반갑고 서글픈 몸이여름 산백합으로 향기로운 것도세상의 이치로는 무리가 아니다반갑다, 밝은 현실의 몸과 몸이여아침 풀이슬에서 너를 만나고저녁 노을 속에서 너를 보낸다두 팔을 넓게 펼치면, 어디서나기막히게 네가 모두 안아진다언제고 돌아갈 익명의 나라는지금쯤 어디에서 쉬고 있을까잠시 전에 내 몸이었던 것, 또 떠나고잠시 전에 내 몸이었던 것이 땀이 되어 나로부터 이탈한다는 것은, 잠시 전의 내 몸이 잠시 뒤에는 주검으로 바뀔 수 있다는 것까지 가정한 표현으로 읽을 수 있는데 이것은 시인의 인생에 대한 깊은 성찰이 낳은 것이다. 영원이라는 무변의 시간이 흐르는 가운데 우리네 한 생이란 얼마나 찰나적이고 순간적인지 모른다는 진리를 느낄 수 있는 작품이다.시인
2017-10-30
길이 끝나는 곳에 산이 있었다산이 끝나는 곳에 길이 있었다다시 길이 끝나는 곳에 산이 있었다산이 끝나는 곳에 네가 있었다무릎과 무릎 사이에 얼굴을 묻고 울고 있었다미안하다너를 사랑해서 미안하다사랑하는 사람은 모든 방향에, 모든 시간에 존재하고 그 사랑으로 하여 끝없이 미안하다고 말하는 순정한 시인의 마음을 읽는다. 이 시에서 시인이 의도하는 것은 비단 사랑하는 사람에 국한된 것은 아니다. 우주에 존재하는 어떤 것에라도 적용하고 있음을 본다. 미미한 이슬 한 방울에도, 산자락에 몰래 피어난 풀꽃 한 송이에도 시인의 그런 순정한 마음은 미치고 있는 것이다.시인
2017-10-27
나는 고향에 돌아왔지만아직도 고향으로 가고 있는 중이다삶을 한번쯤 되물릴 수 있는 그곳온갖 야한 체위로 성애를 조각한사원, 초월을 기쁨으로 이끄는 계단 올라가면영원한 바깥을 열어주는 문이 있는 그곳고향으로의 귀환은 누구나 염원하는 일이 아닐 수 없다. 영원한 마음의 안식처이고 치유의 공간이기 때문이다. 삶을 한번쯤 되물릴 수 있는 그곳이라고 말한 시인의 심중에서 우리는 그런 느낌을 받는다. 그리고 고향은 영원한 바깥을 열어주는 문이 있는 곳이라는 표현에서 고향은 머물지 말고 떠나가라고 일러주는 곳이기도 하다는 것을 느낀다. 세상에 나가 상처받고 지칠 때 돌아오라는 고향의 말인지 모른다.시인
2017-10-26
가랑비 내리다 발길을 거둔다 새들은젖은 둥지 박차며 하늘 깊이 날아오르고잎새 가득 단 나뭇가지 사이로 햇살이줄지어 미끄러져내린다 그 사이로작은 용수철들처럼 멧새 튕겨오른다느릿느릿, 또는 빠른 걸음으로바람이 지나간다 구름을 떠밀면서풀숲의 빗물을 떨어뜨리면서이따금 어떤 바람은 바위와 돌들엎드려 잠든 길들도 흔들어 깨운다비 갠 뒤 산길을 걸으며 싱그럽고 깨끗한 생명의 세계가 펼친 풍경 하나를 그려내고 있다. 함초롬히 되살아나는 아름다운 자연의 세계는 무겁고 답답한 인간 세상과 다르다. 가볍고 신선하고 정직하고 순수하다. 생명감 넘치는 산길을 바짓 가랑이 적시며 걷고 싶은 아침이다.시인
2017-10-25
등사기와 담배꽁초와 소주잔 틈에서사랑하는 친구들이 잠들어 있다멱살 움켜잡던 시퍼런 분노도소주잔에 쓰러지던 서러운 눈물도개나리 고개 달밤도 지나고우리는 간다. 가슴 깊이 출정가 부르며돌아오지 않으리 결코봄과 함께 아니라면 결코사랑하는 여자여, 기다리지 말라돌아오지 않으리결코 결코이 땅의 민주화를 위해 싸우던 시대의 치열한 투쟁의식이 전편에 깔린 작품이다. 출정가를 부르며 투쟁의 현장으로 나서던 시인의 비장한 결의를 읽는다. 봄과 함께 아니라면 돌아오지 않겠다는 표현에서 보듯이 자신의 한 생을 시대의 변혁과 이 땅의 민주화를 위해 바치겠다는 강단진 정신을 본다.시인
2017-10-24
광대한 옥수수밭 위로 노을이 지고 있었다맨손으로 일군 땅 위에 금빛 노을이 지고 있었다옥수수밭 옆에 서너 살짜리 여윈 아이 업고 서서누군가를 기다리는 젊은 아기엄마를 보았다가장 어려운 시기에 아이를 낳아서얼마나 힘들게 키웠을까혼자 그 생각을 했다고난의 시절을 함께 걸어오지 않은나는 진정 이들의 벗인가가는 길 험난해도 웃으며 가자하는 이들과험난한 길 함께하지 않은나는 이들의 형제인가그 생각을 했다오늘 이렇게 손잡고 웃지만내일도 함께 웃으며 가진 걸 나눌 수 있는진정한 벗인가그 생각을 하며 하늘을 보았다평양으로 가는 길폐허의 하늘 위에 뜨거운 노을이 지고 있었다평양에서 열렸던 8·15 민족통일대축전에 참여했던 시인이 평양 교외에서 마주친 북한여자를 보며 느낀 것을 쓴 민족시다. 진한 민족애, 동포애가 느껴지는 작품이다. 이념은 서로 달라도 함께 이뤄가야 할 통일세상이 있기에 서로 화해하고 용납하고 동행해야 한다는 분단극복의 정신이 시 전체에 흐르고 있다.시인
2017-10-23
발길에 걸리는 모난 돌멩이라고마음대로 차지 마라그대는 담을 쌓아 보았는가큰 돌 기운 곳 작은 돌이둥근 것 모난 돌이낮은 곳 두꺼운 돌이받치고 틈 메워균형 잡는 세상뒹구는 돌이라고 마음대로 굴리지 마라돌담을 쌓다 보면 알게 되리니저마다 누군가에게소중하지 않은 이 하나도 없음을전신주 위의 애자가 몸을 떨고 있네기지촌에 비는 내리고먼 데서 달려온 뜨거운 전기평생을 건설현장의 노동자로 살면서 시를 써온 시인의 인생을 깊이 관조하는 눈을 본다. 모나고 못생긴 돌맹이들이 모여 든든한 돌담을 이루듯이 아무리 가진 것 없고 못난 인생이라도 나름대로 소중한 존재감을 가지고 있고, 이 세상을 든든히 떠받치는 역할을 하며 살아가고 있음을 일러주고 있다. 깊은 감동을 느끼게 하는 작품이다.시인
2017-10-2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