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젠가는 나도 활활 타오르고 싶은 것이다나를 끝 닿는 데까지 한번 밀어붙여보고 싶은 것이다타고 왔던 트럭에 실려 다시 돌아가면연탄, 처음으로 붙여진 나이 이름도으깨어져 나의 존재도 까마득히 뭉개질 터이니죽어도 여기서 찬란한 끝장을 한번 보고 싶은 것이다반쯤 깨진 연탄을 바라보며 시인은 자신의 모습을 들여다보고 있다. 깨진 연탄이 활활 타오르고 싶다고 말하며 자신도 한번은 목숨 걸고 자기에게 맡겨진 일을 해보겠다는 삶의 결단과 다짐의 목소리를 듣는다. 시인
2019-05-02
시간은 언제나 곡선공간 속에 구부러져 있다바람 지나기에도쉽지 않은 그 길을너무 빨리 지나가는긴 그림자가 있다길은 시간의 길이다. 인간은 시간이라는 길을 가며 그 속에서 시간과의 씨름을 이어가는 것이다. 시인은 자신의 삶이 탄탄대로 혹은 직선이라고 표현되어지는 무난한 삶이 아니라 곡선으로 표현된 파란만장했던 시인의 길, 시인의 삶은 쉽지 않았던 길이었고 힘겨운 여정이었다고 고백하며 너무 빠른 세월의 흐름을 아쉬워하고 안타까워하는 시인의 목소리를 듣는다. 시인
2019-05-01
님은주무시고나는그이 벼갯모에하이얗게 수놓여 날으는한 마리 학(鶴)이다그이 꿈 속의 붉은 보석들은그의 꿈 속의 바다 속으로하나 하나 떨어져 내리어 가라앉고한 보석이 거기 가라앉을 때마다나는 언제나 한 이별을 갖는다님이 자며 벗어놓은 순금(純金)의 반지그 가느다란 반지는이미 내 하늘을 둘러 끼우고그의 꿈을 고이는그이 벼갯모의 금실의 테두리 안으로돌아 오기 위해나는 또 한 이별을 갖는다잠들어 있는 님의 베겟모의 테두리 너머로 학이 되어 나는데 님은 붉은 보석이 되어 잠 속에 갈아앉는다는 것을 상상하며 시인은 가까워질수록 멀리 이별한다는 역설을 펼치며 사랑하는 님에 대한 그리움과 기다림, 안타까움과 조심스러운 심정을 펴보이고 있다. 시인
2019-04-30
처음에는 까만 개미가 기어가다 골똘한 생각에 멈춰 있는 줄 알았을 것이다등멱을 하러 엎드린 봉산댁젖꼭지가 가을 끝물 서리 맞은 고욤처럼 말랐다댓돌에 보리이삭을 치며 보리타작을 하며 겉보리처럼 입이 걸던 여자해 다 진 술판에서 한잔 걸치고 숯처럼 까매져 돌아가던 여자담장 너머로 나를 키워온 여자잔뜩 허리를 구부린 봉산댁이 아슬하다시인은 들일을 마치고 해질녘 집으로 돌아와 등물을 치며 몸을 씻는 봉산댁이라는 늙은네의 몸을 훔쳐보고, 햇볕에 그을려 까만 개미처럼 생겼다고 표현하고 있다. 시인은 어릴 적부터 담장 너머로 보아온 봉산댁 때문에 관능에 눈 뜨게 되었다는 표현에서 자칫 관능적인 시로 읽혀질지 모르지만 따스하고 정겨운 풍경 한 장을 건네면서 미소를 머금게해주는 넉넉한 여유를 느낄 수 있게 해주는 시다. 시인
2019-04-29
내 앞을 달리는저 LPG 가스통 두 개를 매단저 억척스런 노동자는계급은 상승될 수 있다고 저 길을인생의 밥그릇이라 여기며 차와 차 사이의희끗한 차선을 그의 계단이라 여기며공포의 오토바이를 타고 용감히 배달간다그래 그래 저 길살아있기 보다 살아 남기표절과 마비와 배신승리감이나 패배감으로 우리네인생이 날마다 변하는 곳그러나 바뀌지 않는 것한동안 사라질 순 있으나, 자살할 순 있으나영원히 벗어날 순 없는 나라안전한 곳이라곤 부족한 편안한 나라도망가면 죽을 때까지 도망가야 되는 나라맞서고 싶진 않으나 맞서야 되는 나라, 저 길붉은 신호등이 지켜주는위험한 나라, 우리나라계급 상승이 그리 수월치 않는 현실과 각종 사고로 안전이 담보되지 않는 불안한 현실을 날카로운 비유로 야유하고 질타하는 시인의 목소리를 듣는다. 급속도로 변해가는 후기 자본주의 사회의 비정한 우리 현실에 분노하며 안타까워하는 시인정신을 본다. 시인
2019-04-28
연잎 위의 이슬이이웃 마실 가듯 한가로이 물 속으로굴러 내리지만여기 평화는 반드시 그렇지만은 않다이슬 한 개 굴러내리면서아, 수면에 고요히 눈을 뜬 동그라미가 연못을 쫙 차게돌아나가더니만이 안에 들어와 잠을 자던 하늘이며나무며 산이건곤일척(乾坤一擲), 일거에 일어서서 그 커다란 몸을 추스른다새들, 도도히 날아간다연잎에서 굴러 떨어진 이슬 한 방울이 온 연못을 흔들어 깨우고, 연못에 비친 하늘이며 나무며 산을 일시에 몸 추스르게 한다는 시인의 섬세한 시안이 놀랍다. 이슬 한 방울도 하늘도 나무도 산도 우주 속의 한 개체이면서 긴밀하게 서로 연결, 연관지어진 생명체들이다. 그 광경을 세밀히 바라보는 시인도 같은 경계 속에 놓인 우주적 생명이며 존재라는 인식을 드러내고 있다. 시인
2019-04-25
자장면 왔습니다자장면집 배달원이 자장면을 가지고왔다거기 놓으세요가장 어린 직원이 신문지를 편다야근을 자장면 먹듯이 하는 때우리는 둘러앉아 자장면을 먹는다만 사천 원입니다덤으로 튀김만두도 가져온 배달원은빈 철가방을 들고 나갔다우리는 자장면을 먹으며자장면집은 과연 어디에 있을까?생각했다어느 집이나 다쿠앙의 맛은 비슷하고배달 오토바이의 종류도 다 비슷하다우리는 자장면을 먹으며비닐 랩이 없던 시절에도 국물 한 방울흘리지 않았던그 초절 기교의 배달원들을 생각했다그 때도 자장면집은 존재하지 않았다자장면을 다 먹고 빈 그릇을 복도에내놓으면언제 와서 가져가는지 모르는과연 그 자장면집은 어디인가?전화를 걸어“자장면”하면, 오는말이 이루어지는자장면 배달원의 신속한 행동과 함께 자장면 집은 어딘가를 물으며, 배달이 판을 치는 세상을 염려하는 시인의 목소리를 듣는다. 사랑도 우정도, 인생까지도 주문 배달되는 건 아닐까 하는 우려와 함께 퀵 퀵! 더 빨리 배달을 독촉하는 우리 시대의 세태를 야유하고 있는 것이다. 시인
2019-04-24
마음에 쉬이우상을 세우는 사람은그만큼자신의 자리를 잃어버리는 자이다겨울처럼 비춰지는 것에마다몸을 맡기면자신은 유산되고 마는 것을홀로 빈 들에 서보지 않은 사람은깃발을세운다는 말의 의미를 모른다표표히 나부끼는 깃발에감격해보지 못한 사람은자기의 깃발을세우지 못했음이다이 세상에자기의 깃발을 세운다는 것은아득히 휘날리는꿈을 갖는 일이다우상을 세우는 것은 자기의 욕망을 키워주는 효과가 있지만 끝내는 그 우상을 초월하는 것을 방해하는 것이라는 것을 경계하면서 시인은 우상 대신 깃발을 세우라고 권하고 있다. 깃발은 현실을 초월해서 꿈과 희망, 내일을 담보하고 있기 때문이라고 역설하는 시인의 목소리를 듣는다. 시인
2019-04-23
비명소리 울창한 숲 속꺼지지 않은몽상의 날개를 흔들어대는푸른 쉼표의 시선들인화되지 않은 흔적들을목놓아 부르고 있다시인은 마른 장마를 ‘비명소리 울창한 숲 속’ ‘몽상의 날개’ ‘푸른 쉼표의 시선들’에 비유하고 있음을 본다. 비가 내리기를 간절히 기다리는 갈망과 희망의 목소리가 짧은 시편 전체에 배어 있음을 느낄 수 있다. 시인
2019-04-22
풀린봄물결이여 네 고요 위에봄비는 내려와둥글게 둥그렇게서로서로 몸을 감고 죽는다봄비가 내려서 둥글게 둥글게 물이 되어 삼라만상을 겨울잠에서 깨워 소생시키는 것을 감각적인 짧은 시로 표현하고 있다. 시인은 봄비가 만물을 소생시키면서도 서로서로 몸을 감고 죽는다고 표현하며 소생의 삶과 죽음의 양면을 얘기하면서 유한한 존재들의 초월을 꿈꾸며 염원하고 있는 것이다. 시인
2019-04-21
내 모이 이 세상에 머물기를 끝내는 날나는 전속력으로 달려나갈 테다나를 가두고 있던 내 몸으로부터어둡고 갑갑한 감옥으로부터나무에 붙어 잎이 되고가지에 매달려 꽃이 되었다가땅속으로 스며 물이 되고공중에 솟아 바람이 될 테다새가 되어 큰곰자리 전갈자리까지 날아올랐다가가허공에서 하얗게 은가루로 흩날릴 테다나는 서러워하지 않을 테다이 세상에서 내가 꾼 꿈이지상에 한갓 눈물자국으로 남는다 해도이윽고 그 꿈이 무엇이었는지그때 가서 다 잊었다고 해도시인은 이 세상을 이별한다면 허공에 하얗게 날리는 눈이 되겠다고 말한다. 사는 날 동안 자신을 가두었던 생활의 족쇄랄까 인간관계에 걸쳐진 끈이랄까 욕심과 욕망에 사로잡힌 자신으로부터 과감히 벗어나서 진정한 해방과 자유를 누리겠다고 다짐하는 겸허한 시인의 목소리를 듣는다. 시인
2019-04-18
지나간 일은 원인무효다지나간 일은 원인무효다긴 겨울 혹한에 손바닥 동상이든 시누대 잎들이두껍지 않은 백노지색으로 마른다서울 북쪽까지 이민 온 마른 잎들은끊어진 철근처럼 속의 평행맥들 퉁그러져 나왔거나영광도 굴욕도 없이 찢긴 깃발처럼일제히 고사한 줄기 끝에 매달려 있다부근의방부제 친 미라처럼 썩지 않는몇 구의 폐기된 궂은 잎들 겹쌓인 속에서그러나온몸의 지기를 끌어올리느라 이맛전까지 파랗게 질린여남은 그루의 죽순들비밀결사하듯 막 신발끈 풀고 앉아구호 삼키고 있다지나간 일은 모두 원인무효다새로운 시작이다겨울의 혹한 속에서 잎사귀의 색깔이 바뀐 시누대들도 그 엄청난 시련을 견디며 대항하기 위해 진력을 다 모아 죽순을 끌어올리고 있음을 관찰한 시인의 눈은 인간을 겨냥하고 있다. 아무리 힘든 시련과 고난이 닥쳐와도 그것을 견디며 극복하고 미래를 향해 희망의 끈을 놓지 않아야 한다는 것을 역설하고 있는 것이다. 시인
2019-04-17
그때 우리집 전재산은잘 닦은 놋대야와아버지의 검은 구두 한 켤레군복을 염색해 입은청년이 수갑이 채워진 채 끌려와고개를 수그리고 있었다순경이 다그쳤다- 이 집이지?- 바로 여기서 훔쳤지?그의 짙은 검은 눈썹 같은 어둠이수십 년이 지난 지금갑자기저문 내 저녁 문 앞에몰려와 다그친다나는 밝은 날 다 흘려 버리고막다른 골목 같은 저녁이막막해서그저 네 네고개를 끄덕인다정말 나는검은 잠바 입고 온 그, 저녁에게빛나는 놋대야와 검은 구두 한 켤레를내어줄 수나 있는 것인지시인은 지난 시절 자기 집에 들어와 놋대야와 아버지의 구두를 훔친 도둑이 잡혀온 일화를 들려주면서 자기 자신에게 혹은 우리에게 묻는다. 일생 동안 우리는 잃은 사람에 드는지 아니면 뭔가를 훔친 사람에 드는지를. 생각해보면 잃어버리기도 했고 또 ‘레 미제라블’에 나오는 은촛대가 아니어도 우리는 무언가를 훔친 건 아닐까 하는 물음을 던지며 깊은 사념에 들게하는 작품이다. 시인
2019-04-16
킁킁 냄새를 맡아본다손가락으로 쿡쿡 찔러본다발바닥으로 슬슬 문질러본다물을 붓고 살짝 데친 뒤에앞니로 잘근잘근 씹어본다바람이 불거나 손님이 오면잘 말아 콧구멍 속에 잠깐 넣어두거나아예 척척 접어벽장 이불 속 깊숙이 처박아둔다외출을 할 때는조심스럽게 아내의 이마에 붙여놓고이리저리 돌려세워본다가난이 닥지닥지 붙은 일상의 힘겹고 난처함과 고달픔을 익살스럽고 장난기 넘치는 필치로 써 내려간 이 시는 웃음을 자아내게 한다. 궁핍 속에서도 여유를 가지고 넉넉하고 따뜻함을 잃지 않는 아주 긍정적인 사이의 모습은 훈훈한 느낌을 던져주고 있다. 시인
2019-04-15
웬일로 밤늦게 찾아온 친구를 배웅하고 불 끄고 자리에 누우니 비로소 스며든다 반투명 셀로판지 같은 귀 엷은 소리, 갸녈갸녈 건너오는 날개 비비는 소리, 달빛도 물너울로 밀려든다아하, 들어올 수 없었구나!전등 불빛이 너무 환해서 들어올 수 없었구나 어둠은, 절절 끓는 난방이 낯설어서 발붙일 수 없었구나 추위는얼마나 망설이다 그냥 돌아갔을까은결든 마음 풀어보지도 못하고 갔구나 폭포수처럼 쏟아지는 내 이야기에 멍만 안고 돌아갔겠구나시인은 어둠이 너무 견고하여 그 어둠을 밝히는 등불이 너무 밝아서 벌레도 추위도 어둠도 들어올 수 없는 거라고 말하며 가만히 자신을 돌아보고 있음을 본다. 자신의 오만함이랄까 의식의 사치 같은 것이 있어서 사람들이 쉬 다가오지 못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그런 생각을 하면서 반성하며 성찰하고 있는 시인의 겸허한 목소리를 듣는다. 시인
2019-04-14
과수원의 방들 속에는시간의 흐름이 물들이는매달린 공들시간이 불켜는 등불들그 빛은 향기우리는 저마다의 가지 아래서서두름의 향기로운 채찍을 숨쉰다그것은 나전(螺鈿) 풀숲 속에 숨은 진주알들안개가 가까울수록더욱 살아나는 분홍빛옷을 얇게 입을수록더욱 무거워지는 귀걸이 보석들그들은 얼마나 오랫동안무수한 초록 눈꺼풀 밑에서 잠자고 있는가그리고 열기는서두름으로 더욱 뜨거워져서얼마나 그들이 눈초리를 탐욕스럽게만드는가!시인은 스위스 출신으로 주로 프랑스 파리에서 활동을 했다. 보기에도 먹기에도 탐스러운 과실들은 그냥 자연스럽게 결실에 이르는 것이 아니다, 태양과 공기, 땅속의 수분이 잘 공급되어야 하며, 소담스런 결실에 이르기 위해 엄청난 시련의 시간을 참고 이겨 나가서 아름다운 열매가 되는 것이다. 시인은 이러한 과정과 절차가 허비가 아니라 결실에 이르는 중요한 과정이라는 것을 말하며 우리네 인생도 그렇게 살아야한다는 메시지를 던져주고 있다. 시인
2019-04-11
달이 빈방으로 넘어와누추한 생애를 속속들이 비춥니다그리고는 그것들을 하나하나 속옷처럼개켜서 횃대에 겁니다 가는 실밥도역력히 보입니다 대쪽 같은 임강빈 선생님이죄 많다고 말씀하시고, 누가 엿들었을라막 뒤로 숨는 모습도 보입니다 죄 많다고고백하는 이들의 부끄러운 얼굴이 여울 바람처럼우우우우 대숲으로 빠져나가는 정경이 보입니다모든 진상이 너무도 명백합니다나는 눈을 감을 수도 없습니다10여 년 전 우리 곁을 떠난 시인은 빈방까지 치고들어온 달빛이 속속들이 누추한 세간들을 비추고 누추한 생애를 죄다 비춘다고 말하고 있다. 그리고 흐르는 달빛을 보며 달의 눈빛이 자신을 깊이 파고듦을 느끼고 있다. 무얼하며 어떻게 살았는지, 나이 들어 저무는 지금의 나는 어디에 있는지를 자문하는 겸허한 시인의 목소리를 듣는다. 시인
2019-04-10
끌려나온 내 혼대나무가지 끝에서 운다박수무당의 북소리무당의 칼 휘두르는 소리드디어 통곡하는 내 넋의 소리무당의 공수에 굿발이 받았는디사방에서이승의 울음소리 그치지 않는다무슨 놈의 역마살이 많아나는 수족이 묶여서도무당의 공수에또 다시 역마살의 피톨이 도는가하얀 고무신 신고 저승 가는 길이다지도 힘든 길광주에서 서정성 높은 시를 써온 시인은 최근 풍장(風葬) 연작시를 모은 ‘풍장‘이라는 시집을 발간했다. 시인은 이 시에서 무당을 등장시켜 샤머니즘의 무격행위를 도입하고 있음을 본다. 이 시는 삶의 순정한 욕망들을 환기시키고 인간의 근원적인 허무를 일깨워 그것의 극복을 전제로 하고 있음을 느낄 수 있는 작품이다. 시인
2019-04-09
원불교 자선원에서토마토 사갖고 나오는데모르는 사람이 인사한다(…)마당 쓸던 빗자루 멈추고합장하고머리 조아리며 웃음짓는다(…)하지만 형제여 나는발등에 불덩이가 못내 뜨거워서신도가 아니란다 계율을 잘 몰라서나팔꽃 벙글어 찬란한유월의 아침이 부끄러워서얼른 맞절하고너희네 마당을 빠져나온다시인은 원불교에서 운영하는 자선원이라는 노숙인 재활시설에 들러 무공해 야채를 살 요량으로 토마토를 사서 나오면서 맞닥뜨린 수도자(원생)에게서 자신을 발견하고, 부끄러워 화급히 그곳을 빠져나왔다고 고백하고 있다. 사회의 그늘진 곳에서 웅크리고 살던 그들 옆을 스쳐지나면서 그래도 중산층으로 살아가는 건강한 자신이 미안하고 부끄러웠던 것이다. 순수하고 예민한 시인의 자의식 한 자락을 느낄 수 있는 작품이다. 시인
2019-04-08
개구리 입속에서하아얀 찔레꽃이 피어오르는 날동네 어른들과새 주민등록증을 내기 위해이장님 봉고차를 타고면사무소로 가는 길에지문이 안나와 우짜노 걱정하시는달티 할머니 한 말씀 앞에세상천지 어는 입이 맞대답 하리오종자씨 만들어 가꾸고 키워 온할머니의 닳아버린 지문 속에서온 산천이 되살아나고 손끝마다우담바라 꽃망울이 벙글어 진다통영의 시인 최정규가 쓴 서정성 높은 시다. 새 주민등록증을 내러 이장님 봉고차로 면사무소로 가는 달티 할머니의 닳아빠진 지문에 이 시의 초점이 놓여 있다. 평생 일하느라 닳아버린 그 지문 속에서 온 산천이 되살아나고 손끝마다 우담바라꽃이 피어난다는 시인의 말 속에는 달티할머니의 한 생에 대한 외경(畏敬)의 마음이 스며있음을 본다. 시인
2019-04-07